‘아니지. 아니야! 그랬으면 별명이 감자인 남편도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밤톨 같은 큰 아이 그리고 도토리 닮은 작은 아이가 없었을 텐데.’
왜?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요즈음 북클럽에서 책 읽는 것만큼만 했어도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감자, 밤톨 그리고 나의 귀여운 도토리를 떠올렸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짙은 감청색 교복 속에 상기된
살구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분을 뽀얗게 바른 북클럽 친구들은
학창시절처럼 즐겁다.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나서도 집에 일찍 가지 않는다. 신 나게 놀다 어두워져야 간다. 그러나 그 어린 시절과는 달리 허드슨 강가에 앉아 저녁노을을 보며 그날 배운 강의를 복습한다. 저무는 노을 같은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커지자 한가해진 나는 삶에서 뭔가 빠진 허전함에 헤맸다. 이국땅에 와서 악착같이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이 지내다 어느덧 한숨 돌리면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고나 할까? 순수함이 결여된 내 모습에
나도 섬뜩했다.
나를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작년 7월, 친구의 소개로 북클럽에
갔다. 기대하지 않고 첫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좋은 강의를 그동안
나를 빼놓고 저희끼리 했단 말인가! 지난 3년간 북클럽에서 읽은 책과
강의는 어디 가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에겐 지 모르는 배반감이 들었다.
일 년 후 올 7월, 북클럽에서 영어 사전을 뒤적거리면서 에디스 와튼(Edith Wharton)의 순수시대 (The age of
innocence)를 읽었다. 선생님의 강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사람이 사는 모습에는 4단계가 있다고 강의하셨다.
1단계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에 연연하는 삶, 2단계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삶, 3단계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는 삶, 4단계는 우리 나이에 딴 동네 취급한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에 존재하는 물질이 있단다.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가고 있다고 하셨다.
3단계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2단계로는 살아야 한다며 서로에게
“자기는 아직 1단계야.
분발해.”
놀리고 깔깔 웃으며 우리는 복습했다.
선생님께서 알고 있는 세상을 애타는 열정으로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는 강의는 전율이 되어 내 몸 안으로 치닫는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눈 뜨며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리고 친구에게도 전달되어 함께 기뻐한다. 한 달이 지나면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어 마음이 설레는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둔 운 좋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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