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에어컨 바람이 들어온 것 아니야. 벽에 구멍이 뚫렸나?”
“그럴 리가. 벽이 두꺼워 옆집 소리도 안 들리는데. 아무튼, 미국 사람들은 에어컨을 틀어도 너무 세게 틀어. 추워서 건물에 들어가기가 겁난다고.”
남편은 클로젯 안에 혹시나 옆집 벽 사이로 갈라진 틈이라도 있나 살피지만, 없다.
“생각나? 옆 가게와 구멍이 뚫려서 에어컨 바람이 들어와 시원하다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웃었던 동내 아줌마 이야기.”
“아! 옆 초콜릿 가게에서 에어컨 바람이 뚫린 벽으로 들어온다던 아줌마.”
올해는 이상하게도 밤만 되면 서늘해서 한 번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열어놓고 실링 펜을 노상 튼다. 실링 팬은 냄새도 없애주고 시원 섭섭지 않게 시원하다. 가만히 앉아 글을 쓰거나, 서서 붓질하다가 더우면 샤워한다. 90도가 넘는 날은 바닷가에서 놀다가 다 저녁에 돌아오니 물속에서 차가워진 몸이 덥지 않았다.
“마누라 입에서 덥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네. 춥다는 말은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듣지만, 땀도 나지 않아. 아주 건조한 인간이야. 그래서 성격도 건조한가. 질척이는 인간관계를 싫어하다 못해 무 썰 듯 뚝 잘라버리잖아. 차가운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정도 주지 않는데 왜 그리 만나자는 사람들은 많은지. 비결이 뭐야?”
“뭐 난들 알아. 그러는 당신은 왜 그리 물(水)이 따라다니는데? 다 팔자소관이지.”
용띠인 남편은 물이 따라다니며 자기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상수, 하수도 파이프를 고치느라 바쁘다. 최근 연달아 들이닥친 허리케인 때문에 무거운 타르를 들고 지붕을 때운다고 난리 쳤다. 물이 따라다니는 남편 팔자로 인해 나는 밖에 나갔다가도 소나기만 오면 빗속에서 뛰어야 한다.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가 없다.
콘도에 들어서는 흠뻑 젖은 나를 쳐다보며 도어맨들은 ‘와우’를 연발한다. 왜 비만 오면 저 여자는 허구한 날 뛸까? 궁금해 갸우뚱하지만, 나는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후다닥 문을 열고 들어가 창문들을 닫느라고 난리 친다. 창문을 빨리 닫지 않으면 비가 들이쳐 벽과 마룻바닥이 눅눅해진 것을 보는 남편의 일그러져 짜증 난 표정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놀랄 때 꼬이고 살필 때 풀린다.’라는 스님 말씀을 머리에 되새김질하면서 조심하다가도 빗속에서는 무작정 뛰는 습관이 몸에 밴 팔자가 됐다. 하도 개떡 같은 뉴욕 날씨 때문에. 가을이 점점 짙어진다. 이젠 소나기는 한동안 오지 않겠지? 당분간은 뛰지 말고 우아한 몸짓으로 맨해튼을 거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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