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사이드 공원에서 만나 두 시간 정도 한 달에 세
번가량 함께 산책하는 친구가 있다. 택스팅이나 전화로 산책하러
나가려는데 나올 수 있냐고 그녀가 묻거다 아니면 내가 물어서 콜롬비아 대학을 사이에 두고 그녀는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 함께 걷곤
한다. 요즘은 울창한 숲에 가려 드문드문 보이는 강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메기 스미스’라는 이름표가 붙은 나무 벤치에 앉아 주변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여행 가고 없는 사이에 그녀가 30분가량 메기 스미스 의자에 혼자 앉아 있다가 집에 오니 지갑과 셀폰이
없더란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으니 거기에 놓고 온 것이 분명해 허겁지겁 달려가며 보니 같은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책을 읽는 모습에 마음이 편해졌단다. 남자 옆에 그녀의 소지품들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니!
자기의 귀중품을 지키고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어찌나 고맙던지 한동안 그 남자와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책을 읽으며 귀중품을 잃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다리는 남자가 있는 세상이!
예전에 그녀도 누가 놓고 간 물건을 지키며 찾으러
올 사람을 기다렸던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녀가 남에게 베푼 선행을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가 되돌려 준 것이 아닐까?
이 각박한 뉴욕 생활 속에서 마음의 울타리를 열어놓고
자연을 관찰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삶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가꿔 가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 나도
모르게 일어난다.
화창한 어느 날,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잔디밭에서 선텐을 했다. 저녁때가 되어 일어나 집을 향해 걷다 풀밭에 검은 작은 백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눈에
띄는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집에 가려다 얼마 전 전해 들은 친구의 사연이 생각났다.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백을
쳐다보며 어찌해야 할까를 궁리하며 서성댔다.
혹시나 연락처가 있나 보려고 백을 열어보니 열쇠 꾸러미와 25불이 그리고 나처럼 화가인지 눈에 익은 화구점 디스카운트 카드가 들어있다.
이놈의 도시는 지천이 화가다. 집에 가서 문을 열려면 분명히 열쇠를 찾을 것이다.
한동안 기다리니 아니나 다를까 내 나이 정도의 여자가 급히 내 쪽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닌가. 손을 들어 어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백을 받아든 그녀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나를 오랫동안
껴안았다. 그나마 한 시간 안에 찾으러 와 준 그녀에게 내가 더 고마웠다. 만약 그녀가 오지 않았다며 그 검은 백을 어찌해야 할지가 더 고민거리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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