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툭하면 흰색 머리띠를 두르고 머리가
아프다던 할머니들이 주위에 많았다.
팔다리 굵기가 나의 두 배 그리고 나보다 엄청 더
드시고서도 밥맛이 없다는 시어머니가 LA에서 뉴욕을 방문하셨다.
오시는 날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퀸스에 있는 한인 약국에 모시고 갔다.
진통제를 주며 약사가 살짝 귀띔해 준다.
"한국
시어머니들의 통상적인 엄살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뉴욕에서 큰 병 나시면 복잡해진다.’고 여정을 앞당겨 LA로 돌아가시게 했다.
93세인 시어머니가 또 뉴욕에
오시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안 돼요. 먼젓번에 오셔서 하도 아프시다고
하셔서.”
“내가 언제 아팠니? 나 아픈 데 없다.”
“누가 모시고 오면 모를까 안 돼요.”
결국, 시어머니는
뉴욕 오시는 것을 단념하셨다.
그래서였을까? ‘아이고! 빨리 죽어야 하는데.’로 레퍼토리를 바꿔 반복하며 자식들을 힘들게 한다. 시어머니에게 전화할 때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다.
“어머니 아프세요? 약 먹고 누우세요.
전화 끊을게요.”
“아니다.
괜찮다.” 며 목청이 커지고 밝아진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나이에 나만큼 아픈 데가 없는 사람도 없다.’며 신나서 수백 번도 더 들은 6.25 때 겪은 장면들을 낡은 비디오를 돌리듯 시작하신다.
“9.28 서울이 수복되던 날
서울역 앞 지하도에 인민군 시체가 꽉 들어차,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시신 썩는 냄새가…” 등등
“어머니 자꾸 아프다.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 다들 전화도 하지 않고 싫어해요. 나이 드셨는데 젊었을 때처럼 건강하실 수는 없잖아요. 예전에 시할머니가 머리띠 두르고 아프다고
하시면 효자인 시아버지가 걱정하시고 어머니도 힘들어하셨잖아요”
셋째 아들 며느리가 바로 옆에 붙은 집에 모시고 살고
장남도 출근길에 매일 들여다볼 뿐만 아니라 큰 며느리는 다니던 직장 고만두고 어머니 시중든다. 게다가 생전에 돈 잘 버시던 아버님 연금 나오지. 효녀 막내딸에 남편이
의사인 큰딸이 가끔 수면제와 소소한 약을 가져다주는데 왜 빨리 죽어야 한다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지. 멀리 살며 할 말 다하는 둘째 며느리인 내가 우울증과 불면증의 원인일까?
"엄마는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 걱정이야."
남편은 말끝을 흐리기나 하고. 아무래도 둘째인 우리
부부가 원인 제공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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