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내린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꿈속에서는
여전히 배 안애서 헤매고 있다.
파티, 선물, 카드 그리고 새해 인사 등등
버거운 연말 연초를 피해 크루즈를 탔다. 배에 오르려는데 노인이 구급차 침대에 실려 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배에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이 많다. 물론 우리보다 젊은 사람도
있고 결혼식도 있었지만. 뷔페에서 할아버지 둘이 만나자마자 반갑다며
지팡이를 치켜들고 기운 빠진 펜싱 흉내를 내지 않나! 남편이 살아생전에 만들어
준 지팡이라며 산신령이나 들고 다닐 것 같은 키 크기의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도 있다. 가끔 ‘메디칼 팀! 메디칼 팀!’ 하면서 요란한 호출 소리가
들리며 비상벨이 울렸다.
“아무래도 요번 배는 잘못 탄 것 같아."
남편이 궁시렁거렸다.
“우리 남편 봤니?”
뷔페에서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데 할머니가 묻는다.
“방금 전에 네 남편과
함께 밥 먹고 있었잖아요?"
“나 결혼한 지 75년 됐는데 남편을 잃어버렸어.”
결혼한 지 75년이 됐다면 거의
100살은 됐다는 얘긴데 80 정도로 보이는 것이 치매가 왔나 보다. 치매로 집을 나가 잃어버릴까 봐 아예 남편이 배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태운 것은 아닐까?
스파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가 내린 후에도 두 달 반이다
더 배에 남아 아프리카를 돈단다. 지루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집에 혼자 있다 죽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두려워. 음식이
항상 준비되어있고 수시로 청소도 해주는 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아."
거동이 불편해 집에 있으면 청소하고 요리해줄 사람
불러야지. 빌 내야지. 등등 여러 잡다한
일들에 신경 쓰지만, 배에 거주하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크루즈 여행이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이라 한 곳에 머물며
그곳의 문화를 알고 즐길 수는 없다. 하지만, 잠자리 들기 전에 다음날
닻을 내릴 항구를 상상하는 맛, 긴 시간을 전화와 컴퓨터 없이 책을 읽으며 보낼 수 있는 공간 게다가 공기도
좋고 음식과 잠자리가 정갈해서 타게 된다.
어느 복권 탄 부부가 외부와 단절하기 위해 크루즈로
잠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식들이나 이따금 정박하는
항구로 찾아와 만나면서.
"아들들아, 먼 훗날, 그리 멀지도 않았나?
엄마가 기력이 쇠하면 크루즈에다 버릴래? 너희가 만나고 싶으면 항구로 찾아오고 그것도
귀찮으면 오지 않아도 괜찮아.”
두 놈 다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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