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도 시엄니가 되겠지만, 나는 시집 식구들의 참견을 극도로 싫어한다. 하기야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만, 나 잘난 맛에 사는데 누가 감히 나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느냐는 심보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 식구들은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함경도 출신이라 이러쿵저러쿵
말이 없고 대체로 착하다. 큰 시누이는 자기 생활에 충실하노라
친정과 올케들에게 전혀 말이 없다. 작은 시누이는 효녀다. 친정엄마를
위하고 특히나 장남인 큰오빠를 받들며 집안에 신경을 꽤 쓴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서로 얼굴 자주 볼 일이 없어 다행이다. 문제는 까칠한 내가 LA 시집에
가면 생긴다. 신혼 초 돌아가신 형님이 시아주버니 즉 자기 남편 생일을 내가 챙기지 않는다며 잔소리를 했다.
내 남편 생일은 둘째치고 매 끼니 걱정하며 어렵게 사는 형편인지라
"내가 챙길 수
있는 사람은 시부모 이외는 없어요. 각자가 알아서 챙기시오."
라고 서슴없이 내뱉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효녀 작은 시누가 섭섭했는지 아무 말 못 하고 훌쩍였다. 그 이후로도 내 앞에서 집안일로 섭섭하면 질질 짰다.
달랑 2,000불 가지고 LA에서 뉴욕에
온 화가 남편인 자기 오빠와 결혼해서 학생 론도 갚아 주고 전업 작가 만들어줬으면 됐지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섭섭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아니 효녀 하려면 자기나 하지 나에게 강요해서
뭔 이득이 있다고! 남이면 안면 몰수하면 되지만, 시누이 그것도 착한
사람이 이러니. 극도로 까칠해진 어느 날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내 얼굴만 보면 툭 하고 질질
짜는데 울지만 말고 뭐가 어떻게 섭섭한지 말해 봐요."
시누이는 갑작스러운 내 전화에 놀라 망설이다
"할머니와 엄마가 패물 팔아 작업실을 마련해 줄 정도로 뒷바라지했는데 어쩌고저쩌고. 큰오빠는 작은오빠만큼 제대로 공부도 못했는데 어쩌고저쩌고."
결혼 전 내가 알지도 못하는 고리 골짝 옛이야기를 하면서 훌쩍였다. 전화 끊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중얼중얼 됐다.
"그건 미국 이민 올 때 전세금 빼서 다 돌려줬는데 왠 헛소리를 하는거야"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르게 하라고 큰오빠야 일찍이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 그리된 거고. 시누이들도 대학원까지
공부하고서. 형제들이 희생하고 돈 벌어 내 남편을 뒷바라지했냐고요? 그런 일로 억울하면 유학 뒷바라지 한 우리
친정 부모는 원통해 어찌 살겠느냐고요. 그렇게 억울하면 오빠 데려가 살아요.
나도 네 화가인 오빠 모시고 살기 무척 힘들어요."
그 이후로 울음이 딱 멈췄다. 그야말로 직방이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 다르듯이 각자 효도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시부모가 사랑하는 내 남편, 내가 자린고비 혀 내두를 정도로 아끼고 아껴서
돈 걱정 없이 스튜디오에서 작업만 밀어붙이게끔 분위기 만들어줬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워 시부모를 걱정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효도 방법이다.
다른 형제에게 자기 효도 방법이 옳다고 들이대며 분란을 일으킬 일이 있느냐고!
이렇게 훌쩍이는 울음조차 듣기 싫어 ‘오빠를 데려가라.’ 할 정도인 내가 나중에 시엄니가 되면 절대로 잔소리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한 짓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외국인 며느리를 선호한다.
잔소리가 먹혀 들어갈 만큼 영어 구사 능력이 힘에 부치는 나 자신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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