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를 지나 롱아일랜드로 들어서면 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아련한 그리움이 일어난다. 고향인 서울에 가서도 느끼지 못하는 연민으로.
미국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롱아일랜드 가든시티였다. 사람들 모두가 차에서 내려 집으로 쏙 들어가고, 집에서 나와서는 차를 타고 사라졌다. 이렇게 저마다 바쁜 생활 속에서 더듬거리는 나의 영어를 들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 외로움에 길을 방황하다 열려 있는 미국 교회에 들어가 뒤편에 앉아
있었다. 남편은 오르간을 부인은 하프를 연주하는 부부가 다가와 나의 외로움을 알겠다는 듯 반겨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는 50대 초반의 이들 부부는
차이니스 요리학원에서 배운 음식을 만들어 나를 자주 집에 초대했다. 뉴욕시에서 하는 땡스기빙 퍼레이드를, 그들 부부가 애지중지하는
클래식 롤스로이스 차를 타고 가든시티 엔틱 카 퍼레이드도 참가하는 호사도 누렸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식당을 두루 찾아다니며 골고루 음식을 맛보게 해줬고, 페밀리 파티에도 초대하여 식구들과 함께 연휴를 보내기도 했다.
숫기가 없는 나는 그들이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부담되어 뒷걸음질 치다 결국, 뉴욕시로 학교를 옮겼다. 땡스기빙 때마다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내 손을 놓아줬지만, 결혼 이후엔 빠듯한 생활고로
선뜻 그들 앞에 나타날 용기가 없었다.
툭하면 가든시티 가까운 롱아일랜드 바닷가에 누워 그들을 그리워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아이가 걸을 때 즈음, 존스 비치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그들 집을 찾아 나섰다. 기억을 살려 찾아가니 이사 가고 없었다. 이웃에게 물어물어 어두워져서야 이사 간 집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집이 너무 크고 웅장함에 소심해진 나는 그냥 돌아갈까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눌렀다. 동양사람이 문을 열고 내다보고 얼마후에 부인이 나왔다. 바닷가에서 수영하다
추레해진 모습으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갑자기 밤에 들이닥친 나를 보고 부인은 놀랐다. ‘무슨 일이 있느냐? 도와줄 테니 말하라.’며 예전처럼
반기는 그녀에게 그냥 보고 싶어 무작정 찾아왔다.며 그만 훌쩍이고 말았다.
모래 묻은 발로 소파에 올라가 난리를 치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검은 유니폼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차이니스 메이드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닌가. 왜 하필이면 나처럼 생긴 동양인 메이드인가!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남편이 물어볼 때마다 내 마음은 가든시티로 향한다. 수많은 기억 속에서도 까만 점으로 내몸에 바늘로 새겨진 문신과도 같은 McDonald(맥도날드)
부부가 아직도 생존해 있을까?’ 그분들이 있는 가든시티는 진정 내 마음의 고향이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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