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7, 2014

이름을 불러주세요

낯익은 사람이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며 나를 쳐다봤다그가 반갑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다가 갸우뚱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나에게 물었다.
"누구시더라?"  

'내 이름을 말할까? 아니면 누구의 안사람이라고 할까?' 이것이 항상 고민이다. 나보다 남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빠른 해결 방법이겠지만 나도 내 이름으로 홀로 서고 싶어서다가뜩이나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 못 하는 내 머리구조 때문에 당황할 때가 많다. 나의 거듭되는 실수로 남편은 
오프닝에서 사람들이 다가오며 인사 할 때 누군지 기억나지 않으면 누구시죠?’ 묻지 말고 배시시 웃기나 해. 엉뚱한 사람으로 아는 척하다 망신당하지 말고.”

혹시 김일씨 아니세요? 오프닝에서 어느 여자분이 남편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남편의 이름은 이일인데. 그분 기억엔 오래전 60년대 스타, 레슬링 선수였던 김일과 혼동했나 보다.

"비앙카~"
부르는 큰 소리에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뒤돌아보던 한국 여자, 비앙카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순이나 순자가 어울릴 듯한 얼굴이었다. 순박하고 소박한, 미국물이 전혀 들지 않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시선과 킥킥 참지 못하고 나오던 웃음소리가 진하게 남아 잊히지 않는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나는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아이들 또한 미국, 한국식으로 불러도 부드럽게 발음할 수 있는 한국이름으로 지었다한국이름으로, 누구의 와이프 그리고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며 홀로 서고 싶은데 아직도 누구 와이프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내 이름으로 소개해 달라며 가볍게 부탁한다.

내 이름은 둘째치고 요즈음 내가 즐겨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죄다 기억해내 구글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그들의 근황이 궁금해서다. 특히 젊은 시절 알았던 남자들이 어찌 사는지가 더욱 궁금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오래된 사진이 희미해 바래지듯 자주 보고 부르지 않으면 아쉽게도 잊히는 것이 이름인가 보다.

Friday, September 26, 2014

Please call me my name

Who is it? Do I know him? The familiar man opened the gallery door and stared at me. The man approached me with a pleased expression. Suddenly he stopped and asked me, 'Who is it?'

'Will I say my name? Or whose wife is it? "This is always a problem. It would be a quick solution to mention my husband's name rather than me, but I want to stand alone in my name.

I often get embarrassed because I do not remember the name and faces of people I met before. My repeated mistake is that my husband says, "If you don’t remember who’s coming to greet you on the opening, do not ask 'Who are you?' Do not be embarrassed to pretend to know someone wrong. "

Are not you Mr. Il Kim? At the opening, a woman greeted my husband and asked. My husband's name is Il Lee. She was confused with 'Il Kim' who was a former 60s star wrestler.

A Korean woman looking back to take an elevator in a loud voice called 'Bianca.' I do not forget that her face seemed to match the name of 'Sunhee or Sunja', which doesn’t fit with her exotic name Bianca, and people around her were staring at her with look of amazement at the moment, and laughter

Is it because of such a memory? I decided to retain the name that my parents had given me. The children also made Korean names that can be pronounced smoothly even if they are called American or Korean.

I want to stand alone by my Korean name, not whose wife and whose mother but there are still some people who introduce me as a wife. I ask them to introduce me in my name in the future.

One of my favorite things these days is looking for people I knew before on Google. Especially, I wonder what happen to the men I met in my youth. Unfortunately, I do not remember the name.

I guess it is a name that forgets not to see and call often as old photographs fade away.

Saturday, September 20, 2014

마지막은 어떻게

헝클어진 금발머리 눈물로 가득 찬 푸른 눈동자의 핸섬한 남자가 어두운 퓨너럴 홈에 서있다.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나이 든 여자를 넋을 잃고 들여다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무는 저녁노을을 받아 몹시 슬퍼 보였다.

맨해튼의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서른 넘도록 뉴욕 밖을 나가 보지 할 만큼 바삐 살았다. 아르바이트하며 장학금을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느라 부족한 장례 비용을 와이프의 언니에게 꾸는 과정에서 불화가 생겨 이혼했다.

또한, 그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 할머니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여 스토리지에 넣어 보관하비용도 솔찮게 내고 있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이 어찌나 애처롭고 작아 보이는지,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바위 덩어리 같은 짐을 지워 놓고 그의 부모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외아들인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하는데.

그의 돌아가신 엄마의 통장엔 푼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엄마의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아 렌트비를 내가며 유품을 정리한 다른 스토리지에 보관했다. 가 언제나 장례 빚을 청산하고 기반을 잡아 가난에서 벗어날 있을지?

부모가 죽어서 많은 재산을 남길 필요는 지만, 적어도 장례 비용과 그들이 살다간 흔적을 치울 있을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죽기 , 건강할 집안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고 정리해서 뒤에 남은 자식들이 최소한 버려야할지 보관해야할지를 골머리 썩지 않게 해 주던지.

오래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 내용이 떠올랐. 어느 나이 노인이 죽기 전에 자신이 죽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는 퓨너럴 홈까지 운전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안에서 죽었다는 연극무대와도 같은 내용이.

나는 죽기 전 퓨너럴 홈까지 운전해 가지는 못할 것 같다. 차갑고 어두운 땅 한 자리 차지하고 묻히고 싶지도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쓸만한 장기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화장해서 내가 자주 가던 숲길에 뿌려줬으면 좋겠다사람들에게 알려 부조 받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혹시라도 떠나가는 나를 우연히 누군가가 보러 왔다면 마지막 가는 길에 와인이 곁들인 따뜻한 식사 대접을 해 줬으면 한다. 관은 가장 싼 나무 널빤지라면 더욱 좋고 늙은 나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관 뚜껑은 열지 말았으면 한다.

쓰레기로 남겨질 나를 치울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게 건강할 때 정리해서 버릴 것 버리고 장례비용만은 부족하지 않게 남겨야겠다. 

Friday, September 19, 2014

How is the last?

A handsome man with blond hair and blue eyes filled with tears was staring at an elderly woman lying in a coffin wearing colorful floral dress. The evening glow came through the window he looked very sad.  

Born in a poor family in Manhattan, He leads a busy life. So he didn’t have a chance to go out of New York until he was over 30. He got a part-time job, got a scholarship, graduated from college, and got married. However, a divorce occurred in the process of borrowing money from his wife 's sister to pay for his father' s funeral.  

He has a grandmother who died. It also expends the cost of organizing the remains of the grandmother and keeping them in storage. His back, crying for his mother's death, looked so pathetic and small.

There was not a penny in his mom bank account. But he does not want to erase his beloved mother's memories. He paid for a two-month rent and arranged the mother’s item and keeps them in another storage. Will he be able to clear funeral debt and build up his base and get out of poverty?

I do not have to leave a lot of money, but I should not leave at least have enough funeral expenses and enough to get rid of the traces of my lives? Or before I die, when I am healthy, I dare to discard the unnecessary things in the house and sort them out.  

The articles I read in the newspapers a long time ago do not leave my mind. An old man didn’t want to disturb anyone after he die. He cleaned up everything. And it is like the theater stage that he drove to the funeral home, parked his car in the parking lot and died in the car.

I think I will not be able to drive to the funeral home before I die. I do not want to be buried in a cold, dark ground. If it is possible, I would like to give my useful organs to the people who need them and scatter the ashes on the favorite forest.

Never let people know and if anyone comes to see me by chance, I would like to have a warm meal with wine on my last way. The coffin is the cheapest wooden plank. I do not want to open the coffin lid because I do not want to show my old self,

It would cost a lot of money to clean me up. I should leave the not to be short of funeral expenses.

Saturday, September 13, 2014

여름의 끝자락

"올 여름장사 다 틀렸구먼."
남편이 여름 내내 투덜댔지만 어쩌겠는가? 날씨가 덥지 않았으니. 살다 살다 이렇게 선선한 여름은 처음이다. ‘지구가 병들었나?’

나름대로 지구를 보호한답시고 에어컨도 없고 가스와 물도 아껴 쓰고 전기 코드도 빼놓고 사는데. 식탁 위의 음식은 남김없이 뱃속으로 쓸어담아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며 한 몫 거두는데도 지구는 정말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인가?

여름장사도 장사지만 이가게 저가게 기웃거리며 길을 걷다가도 고객이 뜸한 가게를 보면 남의 일이 아닌 듯 마음이 쓰리다. 왜냐? 허구한 날 물건 사고파는 일보다 그날 하루 메꾸어야 하는 돈이 얼마인가를 계산하고 준비하며 동분서주하던 장사꾼 아버지 딸로 태어나 자란 탓이다

돈이 잘 벌리면 투자하고 메꾸느라 돈을 돌리고 또 투자하고 메꾸고를 반복하던 아버지를 보며 나는 절대로 장사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많이 번 만큼 많이 쓰고 투자를 멈추지 않으니 항상 돈에 쫓기는 듯 불안했다.

"부동산은 우리를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우리가 부동산을 배반 (처분)하면 모를까.’ 부모가 저세상으로 가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아이들이 친구가 멀리해도 한자 풀이대로 不動産 (움직이지 않는 재산)만은 항상 제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말씀하던 아버지는 돈이 돌면 오로지 부동산에 투자했다장사가 안되면 어렵게 구매한 것을 처분하기도 했지만. 그러니 동네 저잣거리의 장사가 잘되고 안됨이 남의 일이 아닌 듯 본능적으로 걱정이 된다.

한여름 내내 차가운 바닷물이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늦여름,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보며 90도가 넘는 날을 기다렸지만, 전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88도인 8월 마지막 주중,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닷가로 달렸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바다를 찾았는지 모세비치로 들어가는 다리가 꽉 막혔다.

바다도 병든 것일까?’ 간장 끓일 때 생기는 누르스름한 거품을 잔뜩 안은 파도가 쉴새 없이 밀려왔다. 물에 한번 몸을 담그고 더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종아리만 파도에 맡기고 주위를 둘러봤다. 여자들 대부분이 가슴을 들어 내놓고 서성대고 옷을 홀딱 벗은 늙은이가 순찰경찰의 경고를 받고 있다. 내놓을 만한 그럴싸한 몸매라면 나도 젖은 수영복을 벗고 드넓은 바닷가를 홀가분하게 걷고 싶다. 그럴싸한 몸매가 아니라 경고받을 일도 없겠지만, 아쉽게도….

올여름은 이렇게 여름답지 못하게 정녕 가는 것인가?’ 
아쉬움에 떠나가는 여름을 붙잡고 매달리기라도 하는 듯 오랫동안 따뜻한 모래밭에서 뒹굴었다.  

잠깐, 바다 산 강들이 변함없이 늘 나를 기다리며 반기는 것이 이것들도 부동산이라 그런가?

Friday, September 12, 2014

The end of summer

"This summer's business is wrong.” My husband grumbled all summer, but what can I do? The weather was not hot. I have never lived in such a cool summer. 'Is the earth sick?’

I am protecting the earth my own way. I do not have an air conditioner. I save gas electric and water. Even though eat all the food on the table to reduced as much as possible, but Is the earth really suffering?

When I look at the shop that has few customers while I am walking around the street, I feel like it is not the other’s business. Why? It is because I grew up to be a daughter of a merchant father who was busy calculating and preparing some money to pay for the day.

Seeing my father repeatedly investing and making money to make up for investing, I vowed never to do business. He spent as much as he earned and he didn’t stop investing. He always seemed to worry about being chased by money.

“Real estate never betrays us. If we betray (sell) property, do not we? When the parents died and the husband abandoned his wife and friends were gone, only real estate (immovable property) always waits for us in place." My father who invested only in real estate whenever he had money said.

He even sold his hard purchased if his business failed. Therefore, I concern instinctively as if it’s not someone else’s business to do well and bad.

Throughout the summer, I waited for the cold seawater to warm up. In late summer, watching the weather forecast carefully and waited for a day that was over 90 degrees, but there was nothing. I couldn’t wait to come. I ran to the beach on the last week of August, which was 88 degrees. Everyone seemed to go beach with the same idea as me. The bridge to Moses Beach was blocked with many cars.

'Is the sea sick?' The waves filled with the yellowish bubbles were pouring all the time. I did not want to sock myself in the water. Only the calf was left on the waves, when I looked around, many women open their breasts and hang around.  Stripped old men were being warned by police patrols. I would like to take off my wet bathing suit and walk freely on the wide beach if I can afford it. Unfortunately I am not a good shape.

I have been hanging in the warm sandy field for a long time as if I were holding onto the summer away. Wait, the sea, mountain and rivers invariably await me all the time, are they real estate too?

Saturday, September 6, 2014

뚫개와 무수리

아침부터 비가 오다 내 개인전 오프닝 시간에 맞춰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다.
"오프닝 날씨가 이 정도는 되야지!"
남편에게 한마디 던졌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남편의 전시회 때마다 거의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날씨 좋은 샌프란시스코 산호세에서 전시했다. 걱정 붙들어 매고 있다가 떠나던 날 뉴욕의 폭설로 비행기가 한 대도 뜨지 않았다. 오밤중에 눈 속을 뚫고 4시간 걸리는 워싱턴을 9시간 운전해 가서 간신히 비행기를 구걸하다시피 얻어 타고 갔다. 충혈된 눈으로 오프닝으로 직행했다.

가장 추운 기록을 남긴 겨울 오프닝, 물난리 난 오프닝, 본인 말로는 용띠라서 물을 부른다나. 어려운 시절 직장이라고 구해 처음 출근한 가게 지하실에 물이 차 온종일 물 푸다 왔다고 투덜 되지를 않나, 친구 집에 모처럼 초대받아 갔더니 하수구가 막혀 도와 달라지를 않나

뒤뜰에서 바비큐 하는 날 비가 와서 비닐을 치고 우중 파티도 했다. 우산 쓰고 고기 굽고 비닐 위를 내리치는 빗소리 들으며 마시는 와인 맛은 그야말로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아무튼, 남편 (이일, 어느 독자 말로는 2 1) 이름 그대로 가는 곳 마다 이일저일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듯하다. 스튜디오엔 하수구 뚫는 연장이 종류대로 즐비하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 뚫개리. 평화롭게 살던 나도 결혼 후부터는 남편의 운명에 발맞춰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아예 뒤처리용 무수리가 됐다.

무수리인 나의 오프닝에 비가 오다 날씨가 화창하니 반색할 수밖에.

멀리 코네티컷에서 기차 타고 지하철 갈아타며 여러 사람에게 물어물어 나의 오프닝에 찾아왔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쓰려다 삼천포로 너무 멀리 빠졌다. 아무튼, 6시부터 주차할 수 있는 갤러리 문앞에 세워 놓은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동양사람이 드문 트라이베카 (Tribeca)에 동양여자가 우산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사용하지 않는 갤러리 문을 열려다 실패, 되돌아가려는 순간, 직감에 내 독자다.’ 차에서 내려 뛰어가 잡았다.

자그마하고 인상이 선한 독자다. 신문으로만 내 글을 읽다 용기 내 먼 길을 왔단다. 매우 고맙고 반가웠다. 일 년 전부터 신문에 난 내 글을 읽는다며 예전 글을 읽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내 블로그에 가면 다 읽을 수 있다며 블로그 주소를 e-메일 해 줬더니 답장이 왔다
"아이가 사탕 한 개 아끼면서 먹었는데 갑자기 사탕이 박스로 생긴 기분이예요."
글도 달콤하게 잘 쓰는 독자다.

뭘 좀 아는, 뭔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몰라도 독자들은 나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이 무수리는 움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