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누라 생일이지?”
“아이고머니나!
내 생일을 다 기억하고 결혼 30년 만에 처음이네.”
남편이 어떻게 해주겠다는 다음 말을 기다리지만 아무 말이 없다.
“고마워 그동안 하루하루가
생일인 것처럼 잘해줬는데. 이 산딸기로 충분해.”
잘 익은 산딸기를 한 움큼 받아들고 이만한 생일 선물이 과연 있을까 싶다. 요즈음 아침마다 걷는 산책 길가에 산딸기가 한창이다.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던 옛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혹시 티켓을 받을까 봐 나는 길가에 서 있고 남편은 숲을 헤집고 산딸기를 따서 잘 익은 것을 골라준다.
“더 따줄까?”
“됐어요. 내일
먹을 것을 남겨 놔야지.”
“오늘이 내 생일인데.”
“일 년에
마누라 생일이 도대체 몇 번이야? 어릴 때 난 말만 꺼내도 할머니와 엄마한테 혼났어. 이북사람은 생일 안 챙겨.”
그렇게 나의 생일이
남편의 초 치는 한마디에 묻어 사라졌었다. 그런데 웬일로 남편이 먼저 물으니
감격할 수밖에. 안 하던 짓을 하는 남편을 새삼스럽게 쳐다보니 머리는 백발에 주름이 주렁주렁, 늙어서 기가 빠졌나? 그도 그렇겠지 남자로 태어나 세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파티, 선물 그런 번거로움보다는 산딸기를 한 움큼 따서 주는 남편이 곁에
있다는 자체가 생일 선물이다.
뛰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걷기도 했던 아침 산책의 걸음걸이가 점점 뒤처진다. 왼쪽 허리가 언덕을 오를 때 쑤셔서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쏜살같이 사라져가는 남편의 등을 보면
얄미워서 따라가 잡고 그냥 머리통이라도 한 대 갈기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 남편은 뒤돌아도 보고, 기다려도
주고, 빨리 오라고 손짓도 한다.
이렇게 멀어지다 어느 날 남편이 뒤돌아봤을 때 시야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남편 또한 내 시야에서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따라잡을 수는 없어도
등을 보고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얄미웠던 남편의 등이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다.
"다음 세상에도 남편과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고 묻는다면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온몸을 가시로 두른 선인장 같은 남편, 가까이 다가가 물을 주고 관심을 기울이면 귀찮아하며 시들시들해진다. 돌보지 않고 무심하면 관심을 끌려고 말라 비틀면서 꽃을 피운다.
가까이도 멀리도 할 수 없는 까다로운 당신(뒤틀이)이기에 이생에서만. 다음 생은 바람이 되어 혼자 자유롭게 떠돌고 싶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영원히
살 수 없다.
‘어제는 여기에 있었는데.’
후회하지 말고 지금
저 멀어져가는 얄미웠던 등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