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친정엄마가 자살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사는 지인이 동네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뜸을
한참 들이더니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서울 집에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절에 갔다고 했다. LA에
사는 사촌이 서울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흘리면서 연락해 보라기에 혹시
‘엄마에게 무슨 일이?’
하는 직감에 전화해서 꼬치꼬치
묻자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엄마가 세상에 없단다.
그것도 내가 모르고 지낸 두 달 전부터. 화를 내거나 매를 든 적이 없이 나를
사랑하던 엄마를 더는 볼 수 없다니! 허구한 날 화장실에서 울며 지내다 3년 후 첫아이를 낳자 안정을 되찾긴 했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이 사찰 저 사찰로 찾아 헤매는
엄마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니!
"친정엄마의 임종 때 없었고,
쉬쉬하다 두 달 후에나 알려 줬으니 혹시 본인만 모르는 일이 아니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말아요.".
버럭 화를 내려다 갑자기 멀어져 가던 하얀 구급차가 생각났다.
우리가 사는 건물 3층에
딸아이 하나 있는 부부가 살았다. 이 부부는 허구한 날 싸웠다. 물건 내던지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
아이 우는 소리가 이어지다 문이 꽝 닫치고 남자가 나가면 여자는 흐느껴 울곤 했다.
"남편이 바람난 여자와 살려고 헤어지자고 때려서 죽고 싶어요."
하소연하는 그녀를 우리 엄마가 달래곤 하는 이야기를
숨죽여 엿듣곤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다 건물 앞 하얀 구급차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아줌마가 사는 아파트 문이
훤히 열려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아무도 없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건너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상상했던 집안이 궁금해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벽에 묻은 신선한 붉은 핏자국을 보고 섬뜩했다. 수도 없이 긁어댄 손바닥 모양의 핏자국은 벽을 따라 이어졌다. 죽음이 임박해서 살려고 애썼던 흔적들인 듯했다.
창문을 닫고 가스를 틀어 놓고 자살한 것이다.
아줌마가 죽고 얼마 후 아저씨는 앓든 이를 뽑아 버린 듯 후련한 모습으로 화장을 곱게 한 여자와 시시덕거리며 건물
앞을 지나다녔다. 훗날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복도에 나와 울던 “아이는?”
하고 물었던 기억이 퍼득났다.
거의 40여 년이 다 돼가는 옛적 자살 소동이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3층 아줌마의 자살이 4층 우리 엄마에게로 와전되다니. 아동 소설책에 흔하게
나오는 사설탐정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 이웃집과 일가친척들에게 일어난 온갖 사건들을 두루 참견하고 어찌 해결되는가를 지켜보았기에
망정이지 남의 일에 민감한 동네 아줌마들 입방아에 찧어질 뻔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