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31, 2014

아들 애인은 연상의 여인

엄마 걸프랜드 생겼어요. 나이가 나보다 엄청 많은데.” 
얼마나?” 
“11살이나.” 
나이가 뭔 상관이야. 엄마보다는 적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일본에 가 있는 작은놈과 화상채팅을 한다. 젊고 바쁜 아이 붙잡고 주책없이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면 그나마 화면 속으로나마 볼 기회를 놓칠까 봐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다.

아이가 혼자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14살이 되었을 때 The Experiment in International Living 프로그램으로 일본 북해도에 한 달간 보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아이는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 만화를 보며 언어를 배우더니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직장 잡아 떠났다.

엄마와 아빠 동기도 12살 많은 여자와 그 옛날에 결혼했다. 결국, 이혼했지만. 네가 먼 곳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느니 여자친구가 생겼다니 다행이다. 나이 많으면 네가 배울 것도 많고 좋지 뭐. 한번 지나간 젊음은 다시 오지 않아. 놀 때 열심히 놀고 일할 때는 부지런히 일해.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할 시기는 지났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니.”

여자 친구 사진을 서너 장 보여주며 
엄마 어때요?” 
"예쁘고 어려 보이네.” 
예전에도 히스패닉을 사귀더니 남미 사람처럼 눈이 크고 윤곽이 뚜렷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려 보이고 예쁘다고 칭찬할 수밖에. 우리 아이는 영락없이 외할아버지를 닮아 일본인처럼 생겼는데 정작 일본 여자 친구는 뉴욕에서 지나치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무려면 어떨까 아이가 좋아하면 됐지.

아이들이 사귀는 여자들을 단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혈기 넘치는 젊은 나이에 우두커니 방에 처박혀 허구한 날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이의 등짝을 보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데 반대라니컴퓨터 게임을 멀리하기 위해 14살부터 여권 페이지를 추가하면서까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해외로 내 보냈다. 지인의 아들이 게임 하다 여자 사귈 시기를 놓치고 마흔 살 나이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검으면 어떻고 희면 어때, 나이 많으면 어쩌랴. 한국말 잘 통하는 며느리 맞아 딸이라며 허물없이 이말 저말 하다가 오해 생겨 틀어지느니 차라리 언어가 달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손하게 대우하며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이 살고 싶은 곳에 살며 저희가 원하는 여자를 사귀고,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괜시리 아이들 일 참견하다가 
"엄마나 잘하세요.'
하며 연락 끊겨 안절부절 애타느니 남편에게나 잘하자. 

Friday, May 30, 2014

Children’s lovers

"Mom, I have a girlfriend. She is older than me." " How much?" "11 years." "Age is not matter. Anyhow she is young than me.”

I have a video chatting with my son who is in Japan once a week. I don’t contact him first because I think I may lose a chance to see him on screen if I keep calling and talk too much to him without hesitation.

When he was 14 years old, he could fly alone, he spent a month in Hokkaido in Japan with the program 'The Experiment in International Living'. Since then, he has been interested in Japan. After learning language by watching cartoons, he graduated from college and left to work in Japan.

"Dad's friend also got married to a woman who was 12 years older than him in the past. After all, he got divorced. I am glad you have a girlfriend rather than being alone in the distance. There’s a lot you will learn from her. Once youth past, youth never comes back. Play hard when you play and work diligently when you work. The time has passed for mom to dictate what you to do. You'll do well on your own.”

Showing three or four photos of his girlfriend, he asked, “How’s she mom?" “She looks pretty and young.” Her eyes are big and sharp outlines. She is not my favorite type. However I have to praise her for looking young and pretty. My son looks like a Japanese like his grandfather, but his Japanese girlfriend is the type I can see in New York. If my son liked her, I can't do anything. 

I have never once opposed the girls that children date. Just imagining my children sitting in a room playing computer games all day long is enough to make me sick. To stay away from computer games, I sent them abroad whenever they had a chance. The son of an acquaintance missed the time to date while playing games and was still sitting in front of the computer at the age of 40.

I don’t mind if their girlfriends are black and white or older. A daughter-in-law who is well-speak Korean can be hurt by misunderstanding by saying things without hesitation. Wouldn't it be better for language to be at a proper distance from another daughter-in-law?

I just hope that my children will live where they want to live, make the woman they want, do what they want to do, and live happily. Don't be so nervous about children's business and let's be good to husband.

Saturday, May 24, 2014

오늘도 공짜를 찾아서

자신의 주제를 너무 잘 알아도, 아니 공짜를 너무 밝혀도 피곤하다. 오늘 또 한 건을 치르느라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좋지 않은 피부에 뒤통수 없는 납작한 얼굴, 눈은 갈수록 처지고 게다가 윤기 빠진 머리털까지 한몫 거든다. 그나마 눈에 뜨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다행이지.

머리를 싼 곳에서 자르면 싼 맛에 그러려니 하지만 비싼 곳을 물어물어 기대하고 자르고 나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함에 지쳤다고나 할까? 나의 밋밋한 얼굴과 머리통을 살려 보려고 애쓴 미용사 탓도 못하고.

맨해튼으로 와서는 어디서 머리를 잘라야 하나 고민이다. 주변 미장원 안을 기웃거리며 어찌해야 할까를 망설이다 무료로 잘라주는 곳을 찾아냈다. 미용실과 미용학교를 겸한 맨해튼에 여덟 군데 지점이 있다는 곳, 매주 월요일 아침 10 30분 까지만 가면 공짜라니 부리나케 찾아갔다.

미용 학원 학생들이 무료로 자르러 온 사람 중에 자르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서 얼굴형에 맞는 머리 스타일을 선생들과 의논한다. 우선 선택된 4명에 대한 토론이 끝나면 머리를 감겨주고 자르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선생이 잘못 자른 곳을 지적하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마무리해줬다. 선생들은 모두가 남자였다. 무료로 자르러 온 남자들이야 머리 스타일이 거의 똑같으니 토론도 없이 여자들이 끝나고 나면 잘랐다.

나는 우리 큰 아이 또래의 학생과 한팀이 되었다. 주고받는 대화가 매끄럽지 못한 것이 이민자인 듯했다. 미용기술을 배워 일자리를 얻으려는 그의 손길은 긴장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잘 못 잘라도 괜찮으니 편안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위로하며 맡겼다.

내 머리카락을 필요로 하는 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 숙인 상태에서 1시간이 넘는 가위질로 목이 아프고 지루했지만, 공짜라는 것을 생각하면 견딜만했다.

정말 공짜라 설까? 지금까지 자른 머리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전시회 오프닝에서 서너 사람들이 
"머리 어디서 잘랐어요?"
물었다. 주소를 알려줬으니 성공한 셈이다.
공짜 좋아하다 대머리 돼. 그 많던 앞머리 숱 다 어디 갔어?” 
남편의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쓰디 쓴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구글 검색에 ‘Free (공짜)’라고 일단 쓰고 또 다른 공짜를 찾아 헤맨다. 

Friday, May 23, 2014

Looking for freebie

Even if I know myself too well, or if I like freebie too much, sometimes it's not good and rather tired, because I had to go to get freebie early in the morning.

I have bad skin, a flat back of the head, and droopy eyes, as well as a lusterless hair. But I am relief that I am not a style that is visible.

If I cut my hair in a cheap place, it's cheap, so I don't blame, but I am not getting any good results at all, even if I go to an expensive place.

I am worried about where to cut my hair after moving to Manhattan. While snooping around in the nearby beauty parlor, and found a place to cut it free of charge. There are eight beauty salons in Manhattan and run beauty schools too, and every Monday at 10:30 a.m., the visit is free.

Students at the beauty school choose who they want to cut for free and discuss the style of hair that matches the face type with their teachers. First of all, when the discussion on the four selected people is over, they begin to wash and cut their hair. The teacher pointed out the place where cut the wrong, gave a demonstration and finished it. The teachers were all men. The men who came here to cut for free have almost the same hair style, so without a discussion, they were cut after the women were finished.

I've teamed up with a student my son's age. She is an immigrant who doesn’t speak smooth English. Her touch to learn hair cut skills and get a job is full of tension and anxiety. I comforted her to do whatever she wants to cut my hair.

I thought that it was good to come to where need my hair, and it was pain and bored with cut my hair over an hour in the state of drooping head, but it was bearable to think that it was freebie.

I like it best of all the hair I've cut. In the opening ceremony of the exhibition, three or four people were asked me, "Where did you cut your hair?" I gave them an address.

"I heard that if you like freebie you get bald. Where are gone all those bangs?" I ignored my husband's thoughtless, bitter words, and I wrote 'Free' in Google to find another freebie.

Saturday, May 17, 2014

용돈받는 엄마의 마음

엄마, 이제부터 매달 500불씩 줄게요.” 
"아이고머니나! 용돈을 주겠다니. 고마워라
언제 어떻게 준다는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만, 그것으로 땡! 더는 말이 없다
자고 가지” 
아니 갈래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붙들었지만 할 일이 있다며 브루클린으로 가더니 연락이 없다.

일 끝나고 학교 가는 길에 잠깐 들러 저녁을 먹겠다고 왔다. 준다는 돈에 대해서 말이 없다
네가 매달 돈을 주면 엄마 아빠가 먹고 싶은 것 사 먹고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면 너도 좋지?” 
슬쩍 말문을 열었다
매달 말에 온라인으로 은행에 넣어줄게요." 
정말!” 
월급이 오르는 내년부터는 더 얹어 주겠다면서 은행 계좌번호는 묻지 않는다. 은행계좌를 알아야 돈을 넣을 텐데….

한국서 나는 선생이 되고 첫 월급을 봉투째 엄마에게 건넸다. 그렇게 기뻐하실 줄이야! 한 달은 월급 다음 한 달은 보너스 100%를 더해 월급의 두 배를 또 손에 쥐어 드렸을 때 엄마의 환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늘 건강이 시원찮았던 엄마는 내 월급날만 되면 혈색 좋은 얼굴로 문밖까지 나와 기다렸다. 그리고는 다음날 이른 아침 몸단장을 하고 은행으로 부리나케 가곤 했다.

활기찬 모습으로 기뻐하는 엄마를 보기 위해 단 한 번도 내 월급에 손을 댄 적이 없다. 대신 엄마는 학교 가기 싫은 눈치가 보이면 택시 타고 가라고, 우울하면 예쁜 옷 해 입고 친구들과 놀다 오라며 부족함이 없이 용돈을 주셨다

선생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중얼중얼, 학부모들이 봉투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풍광이 꼴 보기 싫고 괴롭다며 칭얼칭얼 될 때마다 엄마는 조금만 참으라고 위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동안 내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둔 통장을 보여 주며 유학 가기를 권했다.

10020 10 51불짜리 거기다 혹 공중전화할 때 필요하다며 동전도 한 움큼을 골고루 준비해 유학 떠나기 전날 청바지 허리에 넣어 주며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며 신신당부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내 월급은 유학비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보잘것없었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밑지는 장사를 하면서도 아파 누워 있다 가도 좋아서 벌떡 일어나곤 했는지?

아이가 나에게 항상 같은 날짜에 돈을 주는 버릇을 들여 살면서 제때에 빌( bill) 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그리고 아이에게 돈이 필요할 때 듬뿍 얹은 통장을 내 줬던 우리 엄마처럼 밑지는 장사를 시작해볼까 한다. 이놈이 알기나 할까?

Friday, May 16, 2014

A mother's heart for her allowance

"Mom, I'll give you $500 a month from now on." “Oh my god! I can't believe you're giving me the allowance. Thank you"

I'm waiting for him to say when and how to give it to me, but he didn't say any more. "Sleep here." "No, I'll go." I've been meaning to have a concrete conversation, but he went to Brooklyn and I haven't heard from him.

He came over for dinner on his way to school after work. There is no mention about the money he has agreed to pay. "If you give me money every month, it would be good for me to buy what I want to eat and stay healthy." I said casually. "I'll put it online bank at the end of each month. "Really!" "I will give you more money next year when my salary increases." He didn't ask for my bank account number. He’d have to know the bank account so he could put the money in...

In Korea, I became a teacher and handed my first salary to my mother. She was so happy! The mother was happier when I handed her twice my monthly salary by adding 100 percent bonuses for the next month. My mother, who was always in poor health, came out to the door with a bright face on my payday to wait for me. Then she would dress up early the next morning and rush to the bank.

I have never touched my paycheck to see my delightful mom. Instead, my mom told me to go to the taxi if I did not want to go to school. When I was depressed, she wanted me buy a nice clothes and played with my friends.

I complained the job of a teacher did not fit me, and every time I was told her that I don't want to see the scenery of parent’s bribery, mom would comfort me. Then one day, she gave up her pleasure and recommended that I go abroad to study, showing my bank account that she collected all my salary.

My father prepared money that $100, $20, $5, $1. And a handful of coins for a public phone call for me and said, "Do not worry about money just study hard." the day before I left for study abroad.

My salary was ridiculously small compared to the cost of studying abroad, but My mother is sick in spite of all the money-losing business, why did my mom used to jump up with joy?

I will make it a habit for my child to always pay in time. And I'm going to start a low-end business like my mom, who gives me a bankbook when I need money for my sons. Do my sons know?

Saturday, May 10, 2014

미국사는 맛

맨해튼으로 이사 온 후, 두 다리에 모터가 달린 듯 수시로 집 밖을 들락거린다.  

한발은 액셀, 다른 한발은 브레이크를 밟도록 서울에서 잘못 배운 운전 탓에 미국에서 첫 시험은 바퀴도 굴려보지 못하고 떨어졌다. 학원 다니며 한발로 연습하고 시험장에 갔지만, 운전교사가 실수로 차에 키를 놓고 문을 잠그는 바람에 두 번째도 헛공사.

남편에게 운전 배우다 이혼한다는 소리를 듣고 감히 가르쳐달란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남편은 학원 선생보다 편하게 가르쳐줬다. 산달이 거의 임박해 남산만 한 배를 안고 시험장에 갔다. ‘이번에 운전면허를 받지 못하면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힘들 것 같다.’는 하소연 덕이었는지 합격했다.

운전도 내력인지 친정식구 모두가 소질이 없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스탑사인에 그냥 지나가고, 내가 찾던 곳을 보고 신이 나서 갑자기 멈추고, 뒷좌석에서 난리 치는 아이들을 뒤돌아보고 혼내다가 사고를 여러 번 냈다. 연락을 받고 사색이 되어 달려와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내가 차를 몰고 나가면 불안해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운전대를 더는 잡을 수 없었다.

시집식구들은 모두 다 운전을 잘한다. 차를 달고 사는 LA이기는 하지만, 소질도 있고 즐기기까지 한다. 신기한 것이 짜증 많은 남편이 운전대만 잡으면 마치 고용된 운전사처럼 친절하다. 아침에는 클래식을 오후에는 록 음악을 들려주며 아이 둘 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왔다. 사춘기 때 탈선할 틈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의 과외 활동도 운전해 줬다. 한마디로 빠져나갈 틈을 아예 틀어 막아버린 것이다. 내가 외출 시에도 재즈를 들려주며 드라이브해 줬으니 아마 남편은 전생에 우리 친정집 운전사였나 보다.

허구한 날 드라이브해준 아빠에게 고맙고 미안했는지 아니면 부담스러운지 아이들은 차에 대한 미련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나 또한 더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내 건강하고 짧은 두 다리에 날개를 단 듯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선글라스를 끼고 긴 머리 휘날리며 오디오 볼륨을 한껏 올린 채 운전대를 잡고 달릴 때 미국 사는 맛을 느낀다는 한 지인이 운전대를 전혀 잡지 않는 나에게 무슨 맛으로 사냐?’고 의아해했다
나는야 두 다리로 활기차게 맨해튼을 누비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맛으로 산다.

Friday, May 9, 2014

The taste of American life

After moving to Manhattan, I often go out of my condo as if I have a motor on both legs.

The first test in the United States failed because I learned to drive incorrectly so that my right foot was on an accelerator and my left foot was on a braking in Seoul. In the United State, I went to a private institute to practice with one foot. I took a driving test, but the driver accidentally locked the key in the car, making a fail again.

I learned to drive a car from my husband. My husband taught me more comfortably than driving school instructor. The day of childbirth was nearly imminent, and I went to the driving test with a large belly. "If I don't get a driver's license this time, it will be harder to get a driver's license if I raise my child." I said to a driving tester. I passed the exam. Maybe he sympathized with me.

Whether driving is a personal history or not, all my family members are not good at it. Thinking of something, I passed by the stop sign. When I saw where I was looking, I was so excited that I suddenly stopped. I looked back and scolded the children who were in the back seat. That's why I had several accidents. I couldn't take the wheel any longer, thinking of my husband, who was nervous when I drove out.

Everyone in the family of marriage drives well. They are talented and enjoy driving. What's interesting is that if a husband who's annoyed gets to the wheel, he's as kind as a hired driver. He drove both children to commute to school from kindergarten to high school. When my kid was a teenager, He also drove children's extra-curricular activities so that they wouldn't have time to derail during puberty. When I went out, he also drive for me, so maybe my husband was a driver of our house in previous life.

Whether thank or sorry for his driving on a long time, children ride their bikes without hesitation. I am also free to go to places where I want to go with two healthy short legs without asking my husband because I am sorry anymore.

An acquaintance that said, "when I drive with sunglasses on and a audio volume up, I feel the taste of living in America." She asked me, who doesn't drive at all. What flavor do you live in America?

I live by the taste of snooping around Manhattan walk liv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