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9, 2014

마당쇠는 아니다

수임, 어디 있어? 게이트 열어 줄 테니 들어와.”
전화가 이제야 오다니! 이웃의 시골집 문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가 집에 돌아와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때우고 있는데.

남편과 나는 같은 불럭에 사는 폴리쉬 이웃 뉴욕 업스테이트 시골집에 갔었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난 남편에게 자기 시골 앞집이 헐값에 나왔으니 새로 지은 자기 집도 볼 겸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이웃 부부는 금요일 아침에 떠난다고 했다. 헐값으로 여름용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장밋빛 환상에 우리는 오후에 떠났다.

이웃은 내가 둘째 아이를 배고 시티병원에 들락거릴 때 만났다. 아이 낳을 때까지, 거의 같은 책크업 날짜로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을 함께 달랬다. 그리고는 몇 년 후, 내가 사는 동네 같은 불럭에 커다란 집을 사서 이사 왔으니 그냥 스치는 인연만은 아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폴란드에서 이혼하고 미국에 와 주이시(Jewich) 집에서 메이드로 10여 년 동안 일해 돈을 열심히 모았다. 미국에서 만난 남편 또한 오랫동안 철공소에서 일해 모은 돈을 재혼하면서 합쳐 아파트 여러 채가 딸린 건물을 샀다. 게다가 또 알뜰히 돈을 모아 시골에 52에이커의 땅을 사 저택을 지었다. 그 성실함과 부지런함이야말로 말해 무엇하랴.

그녀의 시골집으로 떠나기 전, 남편에게 
"우리가 떠난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대충을 좋아하는 남편이 그냥 가면 된다고 우기길래 믿고 떠났다. 1시에 떠나 5시경에나 도착했다. 3시경에 다이너에 들려 늦은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심한 트래픽으로 4시간이나 걸려 찾아갔는데. 게이트는 굳게 잠겨 있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게이트 앞의 개인소유사인을 무시하고 숲을 뚫고 들어갔다. 울창한 숲을 꺾어져 자갈길을 따라 내려가는 나무 곳곳에도 개인 소유사인이 붙어 있었다. 저 멀리 웅장한 집이 보였다. 자갈길은 집 앞에서 끝나지 않고 호숫가로 이어졌고 온갖 꽃들로 만발한 정원은 우아하고 화려했다. 곳곳에 카메라 설치사인이 보였다. 소리 높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커튼이 쳐져 있는 것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되돌아 나와 이웃이 말한 헐값에 살 수 있다는 다 쓰러져 가는 집 앞에 ‘For Sale’ 사인을 봤다. 그녀의 집 입구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이 집을 수리해 꾸민다면 한마디로 그녀의 집 수위실로 쓰면 안성맞춤인 너무나도 초라한 집이었다.

자신의 프러퍼티를 돌보기 위해 우리를 파트타임용 붙박이로 쓸려고 했나?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차를 되돌려 오며 기분이 언짢아진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었다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게다가 화가라서 뭔가 가꿀 줄 알고 꾸밀 줄 아는 내 남편을 마당쇠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어찌 됐든 요런 생각이 나를 심란하게 했다

Friday, March 28, 2014

My husband is not a chore guy

"Where are you, Sue? Come in now. I'll open the gate for you." A phone is finally come! Long-awaited phone calls came from the door of a neighbor’s country house when I got home and fill a hungry belly with ramyeon.

My husband and I went to a Polish neighbor Upstate Country House in New York. A few days ago, a neighbor who my husband met on the street was invited us to visit her new house, saying that the house in front of his house came out to sell at a low price. The neighbor said they would leave on Friday morning. We left in the afternoon in the rosy fantasy that we could afford a summerhouse for a low price.

I met my neighbor when I was pregnant with my second child in the City Hospital. Until the birth of the baby, we soothed the boredom of waiting for the hospital's turn on almost the same day of the wake-up. Then, a few years later, she bought a big house in the same block as my house and moved in. So it's not just a casual relationship.

She divorced in Poland at a young age and worked hard for ten years working as a maid at the Jewish house in the United States. The husband, who met in the United States, also worked for a long time at a steel mill. The two remarried, and combined the money they had collected, bought a building with several apartments. Moreover, they saved enough money to buy 52 acres of land in the country, and built a mansion. Sincerity and diligence are the only things to say.

Before leaving to her country house, I asked my husband, 'Do they know we are visiting their house.' He insisted that my husband who loves the 'roughly' could just go. We left at one o'clock and arrived around five o'clock. I stopped by the diner around 3 o'clock to eat late lunch, but it took me about 4 hours due to heavy traffic. The gate was securely locked and did not answer the phone.

Ignored the 'personal ownership' sign in front of the gate and went through the forest. There were also signs of "personal ownership" attached to the trees that walked down the gravel road around the dense forest. I saw a magnificent house far away. The gravel road did not end in front of the house, but continued along the lake, and the garden was gorgeous and colorful with all kinds of flowers. There were 'camera installation' signs everywhere. I called out her name, but there seemed to be no one.

Came back the front of her gate and saw the "For Sale" sign in front of the collapsing house that the neighbor told me to buy at a cheap price. This is the house facing the entrance of her house head-on. If we buy this house and repair it, in a word, it was the perfect house for her janitorial office.

Did she try to use us as part-time butler to take care of her property? It was a thought that popped into my head that I had been upset not to see her.

'I guess they misunderstood my husband as a chore guy who is known to be diligent in my neighborhood, and who knows how to make things better because he is an artist.' Anyway, this thought upset me.

Saturday, March 22, 2014

대박이 나려다

소주 반병을 사이다 마시듯 들어부었다. 그래도 밀려오는 갈증에 냉수를 벌컥벌컥

노환으로 누워계신 친정아버지가 올해 안에 돌아가시지 않으면 나한테 액운이 닥친다는 용하다는 점쟁이의 점괘를 듣고는.

거의 하루하루를 어렵게 연명하시는 아버지를 곁에 두고 액운 운운한다. 게다가 나를 곁다리로 붙여 사람의 심사를 흔드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얄미웠.

미국 오기 전, 언니와 엄마에게 끌려 점집에 간 적이 있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멀리 가는 딸이 너무 걱정되어 감행했나 보다
"바다 건너가 색채 쓰는 일을 하며 아들 둘 낳고, 한번 손에 들어온 돈은 절대 새는 일이 없이 잘 산다."
는 점괘였다. 아직 많은 돈은 없지만, 그런대로 틀린 점괘는 아니다.

친정아버지를 돌보던, 한때 점집을 했던 여자의 예전 점괘는 
"큰아이가 10살 안에 큰일 날 것이니 조심하라그리고 내가 60세가 되면 지병으로 고생한다."
앞뒤 가릴 줄 모르는 천방지축인 10살 이전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통이라도 깨질 수 있다. 여자 나이 60이면 아니 아픈 데가 있겠는가. 뻔한 점괘인 줄 알면서도 항상 조심하며 아이를 키웠고 운동 열심히 하며 산다. 난 점을 본적도 믿은 적도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여동생이 본 점괘는 골골하는 아버지가 올해 안에 돌아가시지 않으면 내가 대신 간다니. 그리고 내 죽음으로 인해 남편이 대박 난단다. 화가 남편 모시고 고생하며 살다, 살만하니 나는 가고 남편은 젊은 여자와 새 인생을 즐기는. 어느 염병할 점쟁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쟁이라고 부르지 말고 명리학자.’라고 부르랬다 는 데 명리학자는 개뿔이.

옛날보다 엄청나게 좋아진 물질적 환경과는 거꾸로 사람들의 심사는 점점 공허해져 무속인 몇 마디에 안절부절 대책을 찾는다고 적지 않은 돈을 퍼붓는다. 그 속에 돌아앉아 계산기를 두들기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나도 아니지만, 기분은 내내 언짢았다.

일제 때 태어나 농경, 산업 그리고 정보 세대를 다 겪으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사신 아버지가 드디어 돌아가셨다. 올겨울 춥기도 억세게 춥고 나에게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한마디로 죽지 못해 살았다. 이젠 아버지도 가셨고 봄이 오고 있으니 아버지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그리도 애지중지 뒷바라지해 키웠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 자신이 무섭고 섬뜩하다.

"아버지 미안해요. 내가 아버지라도 억울해서 어찌 저세상으로 선뜻 가겠어요. 그래서 그리도 병석에서 괴로워하다 가신 것은 아닌지요?"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자식들의 불효를 돌려서 언급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자꾸 생각난다. 입이 열 개라도 앞으로 내 자식들에게 효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나머지 반병의 소주를 들이켜고 얼음물을 벌컥벌컥. 여전히 속이 풀리지 않는다.

Friday, March 21, 2014

It was about to hit the jackpot.

I drank half a bottle of soju when I heard a fortune-teller's fortune saying, "If my father, who is in bed with old age, doesn't die within this year, it will be die instead. I hated the business mindset of fortuneteller that shook people's judgment.

Before coming to America, I was dragged by my sister and mom to go to a fortune-teller. Perhaps my mom worried about me, who was going to go far away from her. 'I will go across the sea and work with colors. Will give birth to two sons and the money I have in my hands live well without leaking. There is not much money yet, but it is not wrong.

Several years later, another fortune-teller told me "your oldest son will be in trouble within tenth years. And when you are 60 years old, you suffer from chronic diseases." Children who are 10 years old, who can't cover back and forth, can break their heads. Wouldn't it be sick for a woman whose age 60?  I know that it was obvious, but always careful, I raised my child and I took care of my health.

This time fortuneteller's viscosity is that if my father doesn't die within this year, I'll die instead. And my death is driving my husband will hit the jackpot such as my husband enjoys a new life with a young woman. She is a fucking fortune-teller.

Contrary to the material environment, which is enormously better than in the past, people's screening became increasingly empty and spends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looking for measures, fretting over a few words from fortune-tellers. I don't listen to the fortunetellers who beating calculators, but I've been in a bad mood all along.

My father, who was lived a life of agriculture, industry and information, died a few days ago. This winter it was cold and it was too hard for me. Spring is coming. My father's death is not so sad. I'm scared and creepy of myself, who doesn't shed a single tear even though my father raised me so fondly.

Dad, I'm sorry. How unfair. Isn't that why you suffered with agony in bed? I keep thinking about my father's words, ' Little goods, and little care.' Even if I have ten mouths, I am not entitled to sing filial piety to my children in the future.

I drank the remaining half bottle of soju. I'm still thirsty.

Saturday, March 15, 2014

옆집 구멍가게 아저씨

먼 옛날에서 온 이 같네! 너 정말 뉴욕에 사는 것 맞아?”

서울을 방문했다가 핸드폰이 없는 나를 보고 친구가 한 첫마디다. 비즈니스로 방문한 것도 아니고 굳이 만날 사람도 없어서 준비하지 않았다.

서울 나간 김에 일본에 있는 작은 아이를 만나볼 겸 '하나 관광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컴퓨터로 약도를 찾아 논현동 학동역 근처로 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공중전화도 씨가 마른 모양이다. 논과 밭뿐이었던 강남이 지금은 흙 한 줌 볼 수 없는 빌딩 숲이다. 예전 같으면 사거리에 서서 고개만 한번 획 돌리면 김 서방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실수였다.

학동역 근처 논현 1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를 찾느라 고개를 너무 흔들었는지 현기증으로 문조차 열 수 없었다. 두 손으로 빛을 가리고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려는 찰나 안에 있던 순경이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주며 반겼다. 뉴욕 경찰과는 전혀 다른 언제든지, 무엇이나 도와주겠다는 표정이다. 아 이것이 한국식 민주 경찰이구나!

친절하게 컴퓨터로 찾아주며 어디로 해서 어떻게 가라고 했다. 도저히 그 근처가 생소해 종이에 적어 달랬다. 약도를 그리던 순경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따라 나오란다. 뒤쪽 자리의 조금 더 높은 분이 
"모셔다드려야지."
한술 더 뜨신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 못 하고 뻘죽하니 서 있었다. 경찰차 앞문을 열어주며 타라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 경찰차 앞 좌석에 앉아 보다니! 고맙고 미안하고 황당해 
바쁘실 텐데 이렇게 까지나?” 
"아침부터 술주정 군에게 욕먹고 기분이 언짢았는데 시민을 돕는 것은 보람된 일입니다."
겸손한 말씀까지 곁들였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방황하다 차창 밖으로. 갑자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서울이 훤해지며 멋져 보이고 포근했다.

여행사를 찾아가니 없다.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서너 군데를 더 들렀다. 그러나 일요일이라서 문 연 곳이 없었다너무도 친절한 우리나라 순경 대우에 감격해 서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살벌한 뉴욕 경찰이 떠올랐다. 맨해튼 빌딩 숲 그중에서도 브로드웨이를 타고 내려오는 북쪽의 거센 겨울 바람만큼이나 매서운 경찰국가 뉴욕을 생각하니 풀어졌던 느슨함이 조여 오며 굳어졌다. 길거리에서 까딱 긴장을 늦추는 순간 티켓을 들이민다. 대꾸했다가는 수갑부터 만지작거리는 그들 속에 사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눈을 부라린 벰파이어 같은 뉴욕 경찰과는 달리 우리나라 경찰은 옆집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친절하다.

Friday, March 14, 2014

An uncle next-door small shop

"I feel you are the person who seem like came from a distant past!" Are you really living in New York?"

This was the word hear from a friend when I visited Seoul without a cell phone. I didn't prepare it because I didn't visit as a business and I didn't have anyone to meet.

While in Seoul, I tried to go to Hana tour agency to buy a air plane ticket to meet my younger son in Japan. I went near Hakdong station in Nonhyeon-dong no matter how much I looked around, I couldn't find it. Even there is no pay phone. Gangnam, which used to be just rice paddies and fields, is now a forest of buildings with no soil. In the past, it was a mistake to think that if I could just stand on the street and turn my head once, I could find Kim.

I had no choice but to go in a Nonhyeon 1 police station. I couldn't even open the door because of dizziness, whether I shook my head too much looking for a travel agency. As soon as I tried to look inside the glass door, a policeman inside jumped up and welcomed me, opening the door. His attitude was like he'll help anything at any time. He looks was totally different from the New York Police officers. Ah, this is the Korean-style democratic police!

He kindly found the address of Hana tour on the computer and told me where to go. I was so unfamiliar that I asked him to write it down on paper. A policeman who used to draw a map suddenly leaps up and said to me to follow him. A little higher police man in the back seat said, 'why don't you take her there.' I stood there in a daze, not knowing what was going on. He opened the front door of the police car and told me to get in.

Oh, my Go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sat in the front seat of a police car! I said thanks him with embarrassment. He even humbled, "I've been cursed and offended by a drunken man since early in the morning, but it's worth helping a citizen like me." I don't know where to look. I looked out of the car window. Suddenly, Seoul, which I didn't like very much, looked nice and warm.

The moment I was so moved by the kind treatment of police officers, I wanted to live in Seoul Korea. And I came to mind the brutal New York police officer as fierce as the strong winter wind in Manhattan building forest. The moment I'm off guard in my life, I got a ticket of fine. I am miserable living in a police state that handcuffed me to the slightest mistake.

Unlike the some of the New York police officers, such as the vampires who blow their eyes, the Korean police were kind as the uncle next-door small shop.

Saturday, March 8, 2014

에너지 맨

큰아이가 공부하고 일하는 분야가 에너지다. 솔라( solar), 카본( carbon) 전지(battery) 등등 에너지를 세이브해서 자연을 보호한다나, 아무튼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문 분야를 저녁 식탁에서 자주 들먹인다. 에너지가 넘쳤던 아이가 에너지 공부를 한다니 제자리를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기운이 넘쳐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아이를 키우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기어 나온 줄도 모르고 밀고 가다 길바닥을 기어가는 아이를 놀래서 쫓아가질 않았나. 툭하면 침대에서 기어 나오려다 무거운 머리통이 먼저 떨어지며 수박 통 쪼개지는 소리에 놀라지를 않았나, 성인이 된 지금도 엉뚱한 짓을 하면 그때 충격 여파가 아직도 남아서인가? 의아해한다.

넘치는 에너지를 줄이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아이가 6개월이 되자 수영을 가르쳤다.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지치지도 않아 끌어내기도 힘들었다. 기운이 좋아 수영도 잘해서 코치가 올림픽을 운운하기도 했었다그러나 기운만 좋다고 수영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합 때마다 start 총소리에 맞춰 물에 뛰어내려야 하는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수영에서 손을 놓았다. 에너지도 긴장감은 누르지 못했다.

작은 아이와는 달리,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항상 분주하다. 걸프랜드도 수없이 많았다. 누구를 닮아서일까? 아무래도 친정아버지를 닮아서라고 자백하는 것이 빠르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의 긴 잔소리에 시달리며 친정아버지의 그동안 여성 편력이 쏟아져나온다.  

아들이 여자에게 체일 때마다 
"네가 그렇게 하니까 체였지. 더 좋은 남자 만났다니 잘된 거야." 
아들이 사귀던 여자를 멀리하는 눈치가 보이면 
"조금만 더 여자에게 시간을 줘라. 불쌍하지도 않니. 엄마 없이 혼자 동생 돌보며 컸다는데." 
내가 체인 듯 가슴이 쓰라렸다.

"아들아 네가 공부하는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시간과 에너지 고만 낭비하고 지금 사귀는 걸프랜드와는 오래 사귀길 바란다. 다투고 헤어질 때마다 네가 하는 공부와 일에도 지장이 많지 않니눈치껏 걸프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빠릿빠릿 챙겨라. 여자를 힘들게 해서 그 화의 에너지로 네가 힘들고, 여자가 힘들고 엄마에게까지 영향이 오지 않게 말이다."

여자와 다투고 헤어지는 것도 습관이다. 어떤 여자와 배필이 되려고 저렇게 우왕좌왕하는지. 내 배 속에서 나왔지만 정말 감이 안 잡힌다.

Friday, March 7, 2014

Energy man

Energy is the field where my elder son study and work. Solar, carbon and battery, etc. protect nature by saving energy. Anyway, he often picks up his specialty at the dinner table that I don't even know. A child who was full of energy is studying energy, so he seems to be on his way.

It was not easy to raise a child who had to keep moving because he was full of energy. I didn't know the child was crawling out of the stroller. I was surprised and chased to catch the child crawling on the street. He would often crawl out of bed and hit his heavy head against the floor. I used to surprise by the sound of splitting a watermelon

The choice of reducing excess energy taught the child to swim when he was six months old. Once in the water, it was hard to pull him out because he was not tired. He is good at swimming, so the coach wanted him to be an Olympic athlete.

However, being full of energy doesn't make him a good swimmer. The child, who could not stand the tension of jumping off the water at the sound of a start gun, gave up the swimming. The energy didn't hold back the tension.

There were many things he wants to do and he's always busy. There were countless girl friends, too. Who does he look like? It's fast to confess that he looks like my biological father. Otherwise, I suffered from my husband's long nagging about my father's flurry of love stories were pouring out.

Whenever my son changed a girl, I said,  "Just give her a little more time. Don't you feel sorry for her? I heard she grew up taking care of her brother alone without mother." My heart ached.

Son, the energy you study is important, but now I don't want you to waste time and energy on girl. Don't you have a lot of trouble with your studies and work every time you argue and break up? It is also a habit to argue with a girl and break up with her. What kind of girl are you looking 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