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 어디 있어? 게이트 열어 줄 테니 들어와.”
전화가
이제야 오다니! 이웃의 시골집 문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가 집에 돌아와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때우고
있는데.
남편과 나는 같은 불럭에 사는 폴리쉬 이웃 뉴욕 업스테이트
시골집에 갔었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난 남편에게
자기 시골 앞집이 헐값에 나왔으니 새로 지은 자기 집도 볼 겸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이웃 부부는 금요일
아침에 떠난다고 했다. 헐값으로 여름용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장밋빛 환상에 우리는 오후에
떠났다.
이웃은 내가 둘째 아이를 배고 시티병원에 들락거릴
때 만났다. 아이 낳을 때까지, 거의 같은
책크업 날짜로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을 함께 달랬다. 그리고는 몇 년 후, 내가 사는 동네 같은 불럭에 커다란 집을 사서 이사 왔으니 그냥 스치는 인연만은 아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폴란드에서 이혼하고 미국에 와 주이시(Jewich) 집에서 메이드로 10여 년 동안 일해 돈을 열심히
모았다. 미국에서 만난 남편 또한 오랫동안 철공소에서 일해 모은 돈을 재혼하면서 합쳐 아파트 여러 채가 딸린
건물을 샀다. 게다가 또 알뜰히 돈을 모아 시골에 52에이커의 땅을
사 저택을 지었다. 그 성실함과 부지런함이야말로 말해 무엇하랴.
그녀의 시골집으로 떠나기 전, 남편에게
"우리가 떠난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대충’을 좋아하는 남편이 그냥 가면 된다고 우기길래 믿고 떠났다. 1시에 떠나 5시경에나 도착했다. 3시경에 다이너에 들려 늦은 점심을 먹느라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심한
트래픽으로 4시간이나 걸려 찾아갔는데. 게이트는 굳게 잠겨 있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게이트 앞의 ‘개인소유’ 사인을 무시하고 숲을 뚫고
들어갔다. 울창한 숲을 꺾어져 자갈길을 따라 내려가는 나무 곳곳에도 ‘개인 소유’ 사인이 붙어 있었다. 저 멀리 웅장한 집이
보였다. 자갈길은 집 앞에서 끝나지 않고 호숫가로 이어졌고 온갖 꽃들로 만발한 정원은 우아하고 화려했다.
곳곳에 ‘카메라 설치’ 사인이 보였다.
소리 높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커튼이 쳐져 있는 것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되돌아 나와 이웃이 말한 헐값에 살 수 있다는 다
쓰러져 가는 집 앞에 ‘For Sale’ 사인을 봤다.
그녀의 집 입구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이 집을 수리해 꾸민다면 한마디로 그녀의 집 수위실로 쓰면 안성맞춤인 너무나도
초라한 집이었다.
‘자신의 프러퍼티를 돌보기 위해
우리를 파트타임용 붙박이로 쓸려고 했나?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차를 되돌려 오며 기분이 언짢아진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었다.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게다가
화가라서 뭔가 가꿀 줄 알고 꾸밀 줄 아는 내 남편을 마당쇠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어찌 됐든 요런 생각이
나를 심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