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분 나빠. 나 서울에 있으면 대접받는 사람이라고. 뉴욕에서는 왜들 이러지?”
“안식년으로 뉴욕에 왔으니 서울에서 자기를 떠받들던 사람들 다리 죽 뻗고 편히 쉬고 있겠네.”
내 입도 참을 수 없었는지 시큰둥하게 툭 뱉어냈다.
오래전 유학시절 함께 하다 서울로 교수가 되어 떠나 한국에서 사회적 후한 대접에 익숙해진 지인이
뉴욕에 와서 한 투정이다. 아니 뉴욕에서 고생하며 유학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곳 생활을 뻔히
알면서 누가 누굴 대접해야 한단 말인가? 로마에 가면 로마식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서로가 다른 환경에 젖다 보니 모처럼 만나도 예전 같지 않다. 서울식, 뉴욕식 어느 쪽도 만족하지 않는다.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몰려드는 방문객에게 치일 지경인데 안식년이라고, 여름 방학이라며 뉴욕에
와서들 연락하니 나 원 참. 그 옛날 허심탄회하게 하던 우스갯소리도 없어지고 옛 동기 앞에서 점잖을 빼며 목에 힘을 주는
만남을 굳이 내가 왜?
“왜? 서울에 왔을 때 연락하지 않았어?”
말들은 잘해요. 서울에 가면 한턱 운운하며 떠벌리지만, 막상 연락하면 외국 여행 중이었다며 얼버무리기나 하고.
오래전 맨해튼 그랜드 스트릿, 커다란 스튜디오 한쪽은 룸메이트가 쓰고 우리 부부는 다른 한쪽을 쓰며 살았다. 대학원 학위는
받았지만 변변한 직장을 구하는 것과 하등 쓸모없는 졸업장은 손에 쥐었다. 생계를 위해 남편은 브로드웨이와 케널 스트릿 코너에서
블라우스 장사를, 룸메이트는 크라이슬러 빌딩 앞 거리에서 은빛 나는 핫도그 손수레를 놓고 새우롤을 튀겨 팔았다.
저녁마다 구겨진 잔돈을 피고, 앞뒤를 맞추며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시시덕거리며 돈을 세곤 했다.
매상이 좋은 날은, 옆 차이나타운에 가서 평상시에 먹던 음식에 워터크로스 한 접시를 더 얹어 먹으며 그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떠들었다. 비록 궁색한 생활이었지만 삶에 대한 열정은 한여름 땡볕만큼이나 뜨거운 시절이었다.
룸메이트가 팔던 새우롤을 사서 먹던 한 흑인이 반쯤 베어먹어도 새우가 나오지 않자 불평을 하더란다.
“Keep
eating. The shrimp will come out. (더 먹다 보면 새우가 나온다.)”
고 했다는 룸메이트 말에 우리는 배를 잡고 발을 구르며 웃곤 했다.
새우가 너무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 투덜거림이다.
새우가 너무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 투덜거림이다.
‘새우가 새우젓만 해서 ….’
정녕 우리는 그 당시의 풋풋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는 영 글러 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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