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자.”
“또?”
“소설 쓰려면 뭔가 경험해야지.
하고많은 날 집에만 있으니 소재가 있어야 글을 쓰지.”
“소설은 아무나 쓰나.”
“소설은 아무나 쓰나.”
남편의 쓴소리에 컴퓨터를 켜고 어린 시절 내 가정교사
이름을 구글에서 찾아봤다. 없다. 이리저리 아무리 찾았지만, 아예 없다.
대학준비 시절, 아버지는 입주 가정교사를 들였다. 내로라하는 대학을 다니는 여자다. 작은 키에 허리는 잘록하고 머리는 뽀글뽀글 파마해 길게 엉덩이까지
늘어트려 보기만 해도 뒤돌아보게 하는 모습의 여자다. 잘 가르치기는 했지만, 허구한 날 공부 끝나면 밤늦도록 돌아다니다 새벽에 들어왔다.
푸릇푸릇 새싹이 움트고 봄바람이 불자 검은 망사 스타킹에 핫팬츠를 입고 남산에 바람 쐬러 나다녔다. 핫팬츠를 입고 걸어가는 그녀의 등에 대고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한겨울엔 속옷만 입은 위에 코트를 걸치고 다니지를
않나. 새벽에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면
“아이고 추워라.”
코트를 벗는 그녀의 허연 속살이 드러났다.
어쩌다 함께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남자들이 눈을 휘둥거리며 돌아보고 용기 있는 남자들은 말을 걸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따라오면 나를 먼저 보내고 한참 후에나 들어오곤 했다.
“왜 맨날 밤늦게 그러고 다녀요?”
최고 학벌과는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고 다니는 것이 너무도 이상해서 물어봤다.
“소설을 쓰려면 경험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야.”
그러고
보니 그녀는 국문학 전공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삼류 통속 소설을 쓰려나!’
나도 남들처럼 소설을 쓰고 싶지만, 소설 하면 그녀가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경험 부족으로 쓰기는 틀렸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태어나 시멘트로 지어진
성냥갑 같은 공간에서 자랐으니. 부모 말 잘 듣고 뉴욕에 와 결혼해서 남편 그늘 밑에서 아이 둘 낳고 평범하게
사는 내 머리에서 소설이 나올 리가 없다. 그렇다고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글 잘 쓰는 사람 대부분은 지방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자랐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많은 이웃과의 소통으로 남다른 성장 과정을 통해 생기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어린 시절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나는 끽해야 두 페이지가 한계다. 누구 말대로 문학은 고통의 산물이라 하지 않는가!
소설을 쓰려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며 오만 경험을
다 한 그녀가 과연 소설을 쓰긴 쓴 건가? 구글에 찾아봐도 없는
것을 보니 세상 경험만 하고 끝난 듯하다.
경험도 상상력도 없는 내가 우째 소설을 쓸까나? 올라가지 못할 나무에 오르려다 떨어지지나 말고 주변 정담이나 감칠 나게 써 봐야지. 소설은 무슨….
경험도 상상력도 없는 내가 우째 소설을 쓸까나? 올라가지 못할 나무에 오르려다 떨어지지나 말고 주변 정담이나 감칠 나게 써 봐야지. 소설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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