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7, 2013

같은 여자가 아닐까?

비가 온종일 추적추적 온다. 이런 날엔 떠오르는 생각이 왜 이리도 많은지.

어디였더라? 뚝섬이었나?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한강 변을 우산도 없이 걸어 이태원까지 걸었다. 이제 그에 대한 기억은 짙은 안갯속으로 잠기듯 가물가물하다.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비가 뺨을 적시고, 쓰라린 가슴을 후비며 파고들었다. 발에서 빠져나가려는 젖은 신발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던 기억만이 선명하다.

얼마 전 빗속에서 차를 기다리며 내 시선을 잡던 여자, 내가 아는 남자와 함께 있던 여자다. 나는 이 여자를 볼 때마다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는다. 몇 번 본 여자임에도 함께 있는 남자가 볼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헷갈린다. 바뀐 남자마다 낯설지 않기에 나의 시선은 항상 그 여자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그녀도 나를 의식하는 눈빛이었다.

신혼 초, 맨해튼 소호에서 룸메이트와 셋이 함께 살았다. 우리를 알고 지내던 온갖 사람들이 그곳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친구들만 들르는 것이 아니고 친구의 친구 그리고 여자 친구까지. 아예 뉴욕에 와서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때에 찌든 회색 소파에서 기거하던 사람들도 있다.

낡아빠진 커다란 스튜디오 한쪽 우리 침실 밑에 변변치 못한 부엌이 있었다. 빈손으로 오기 뭣하면 차이나타운에서 사 온 찬거리로 요리 실력을 발휘하던 여자들도 있다. 어둡고 을씨년스럽게 추운 그리고 조용할 날이 없던 삶에 지친 나는 시간만 나면 슬그머니 부엌 위 침실로 기어 올라갔다. 피곤한 몸을 옆으로 누이고 도마 소리에 맞춰 떠드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금도 우리 룸메이트와 몇 번 만난 한 여자의 이야기가 귀에 생생하다내가 부엌 위 침실에 누워 있는 줄 모르는 여자가 옆에서 일을 거들던 우리 룸메이트에게 하는 소리다. 일식집에서 일한다는 이 여자 말이 
"이수임은 밥맛 없게 생겼어. 소고기가 부위별로 맛이 다르듯이. 여자가 밥맛 없어."
내 흉을 보는 내용이었다. 그녀 말처럼 매력이 없는 나는 30년 가까이 한 남자와 질기게 살고 있다. 그렇게 넘치는 매력의 그녀는 우리 룸메이트에게 채었단 말인가!   

얼마 전 빗속에서 시선을 마주친 그녀가 그 옛날 우리 룸메이트와 몇 번 만나다 채인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착각일까? 오래전 일이라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쳐다보는 눈빛 하며 발산하는 분위기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나도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군!"

Friday, April 26, 2013

I wonder if it's the same woman.

It's been raining all day. Why do I have so many thoughts on days like this?

Where was it? Was it Ttukseom in Seoul? After breaking up with the man I was dating, I walked along the side of the Han River without an umbrella even walked to Itaewon. Now memories of him faded into thick fog. The rain, flowing through my hair, moistened my cheeks, and pierced bitter chest. The only vivid memory was of trying not to miss the wet shoes that are trying to get out of my feet.

A woman who caught my eye waiting for a car in the rain with a man I know. 'Where did I see her?' Although she is a woman I've seen a few times, I'm confused because every time a man with her, it's different. My eyes always hang about her because every time a man is no stranger. She looked conscious of me, too.

At the beginning of my marriage, our couple lived with a roommate together in Soho, Manhattan. All the acquaintances that knew us came in and out of our studio like they own. Not only their friends but also their girlfriends were in and out. Some of them even lived on the dingy gray couch in the middle of the room until they came to New York and found a place to live.

There was an unkempt kitchen under our bedroom on one side of the big studio. Some women used to show off their cooking skills with grocery they bought in Chinatown. Tired of the dark, gloomy, and bustling life, I sneaked up into the bedroom above the kitchen, whenever I could. I used to lie down on my side and listen to the sound of cutting boards. Even now, the story of a woman I met with my roommate several times is vivid in my ears.

It was the sound of a woman who didn't know I was lying in the bedroom above the kitchen, telling my roommate who was helping her beside her. The woman, who works at a Japanese restaurant, began to talk, 
"The taste of beef varies depending on the part,' she said. After all, the core of the story was that "Soo Im Lee is unattractive like the most tasteless part of beef. I have lived with my husband for nearly 30 years even if 'I am a tasteless person.' With all her charm, why did she get dumped by our roommate?

Why does it occur to me that she is a woman who was dumped by my former roommate? Am I mistaken? It's a long time ago, so it's not clear, but the way she looks at me and exudes an atmosphere that is so similar.

I'm finally starting to write a novel, too!

Saturday, April 20, 2013

친구가 아니란다

어느 화창한 봄날, 풍광 좋은 야외에서, 즐거운 식사 도중이었다

친군데요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친구 아닌데요.” 
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우리 둘의 관계가 궁금해서 물었던 사람이 
"그럼 어떤 사이?"
다시 물었다. 그녀는 
"남편과 친구 사이예요."
나하고는 친구가 아니고 내 남편하고 친구라니너무 황당한 대답에 할 말과 밥맛을 잃은 나는 수저를 놓고 멀리 허공을 무상하게 응시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식사 초대도 하고, 입지 않는 쓸만한 옷가지도 건네곤 한다. 나도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하는데 뭐 줄 것이 없나 집안을 둘러보지만, 쇼핑 기피증이 심해 집안이 횅하도록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친구에게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요리 실력도 신통치 않아 사람 부르기도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흔한 말로 서울 깍쟁이라 사람들에게 얍삽한 정도 웬만해서는 주지 않았다. 게다가 불가근불가원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주장하며 살았으니.

그녀가 30여 년 전에 유학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같은 학교의 내 남편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남편보다 더 나와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남을 이어오지 않았는가
"나 혼자만의 친구였었나그녀가 폐경기를 치르느라 신경이 날카로워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워서인가?"
이 상황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 나 또한 혼란스러웠다. 뭐 오랜 세월 나눈 사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할 말은 없지만. 나 같아도 얌체인 나를 친구로 하고 싶지 않겠지. 그래도 난 그녀를 좋아했는데.

친구가 아닌데요.” 
라는 그녀의 말이 섭섭해야 할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홀가분 해져 자유로워진 이 기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그녀는 모임에서 만나면 수다쟁이인 나를 제치고 그동안 못한 한국말을 토하듯 쏟아 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더는 그녀와 이야기할 일이 없으니 이 사람 저 사람 골고루 이야기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나의 친구는 아니었던 듯하다.

며칠 전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딱히 할 말도 없고 반갑지도 않았다. 스쳐 지나며 다른 친구에게로 갔다. 오랜 세월 해 왔던 데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그녀가 다가왔지만, 등을 보이며 남편에게로 갔다. 또다시 다가왔다. 친구라고 말한 내 남편에게 그녀를 맡기고 나는 또 다른 친구에게로 갔다.
"친구 아니라며." 

Friday, April 19, 2013

She said that I’m not her friend

It was a pleasant meal one spring day, in the sunny outdoors.

“I'm her friend,” I replied. But she said that I’m not her friend. I was surprised at the unexpected answer. The woman who asked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us asked again, "Then what'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She said she is a friend with my husband.

'You're not friends with me, you're friends with my husband.' Losing my taste and words to her absurd answer, I placed my spoon and gazed away into the air vacantly.

My friends invite me to dinner. They also hand over useful clothes that they don't wear. I have to reciprocate something, but I have nothing to give, because I don't like shopping. I don't remember giving much to my friend. It is true that cooking skills are not so good that hesitate to call people.

In common words, I am a Seoul miser and did not give any affection to people. In addition, I live insisting on a human relationship that is neither near nor far away.

She came to study abroad more than 30 years ago and met my husband before me. However, she has been meeting with me more than my husband. Was I only thought she is my friend?

Is it because she's so nervous about playing menopause that she's psychologically confused? I was confused too because I couldn't understand the situation no matter how much I thought about it. 'Our long relationship was nothing!' I was at a loss for words.

I should be sorry to hear her say, 'I’m not a friend,' but what's this feeling of being free over time?

With a foreigner as her husband, she would hold me when she met me at a meeting and puke out the Korean words she had not been able to speak. My wish to talk to others came naturally, as I had nothing more to be held by her. Come to think of it, she wasn't my friend either.

I met her at the meeting a few days ago. I didn't have anything to say to her and I didn't welcome her. I went to another friend without pretending to know her. She came over to talk as she had been for many years, but I went to my husband. She came to me again. I left her to my husband and I went to another friend.

'You said you weren't a friend.

Saturday, April 13, 2013

두 어머니의 눈물

나이 드신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도 아니고 넉넉히 용돈을 드리지도 못하는 내가 효도랍시고 하는 일이 있다. 주말에 전화해서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거다. 나이 들면 방금 일어났던 일들은 순간순간 까먹지만, 옛일은 선명하게 기억한다더니 시어머니의 이야기는 항상 멀리멀리 옛일로 치닫는다.

어느 해인가 으스스한 초겨울에 아비가 사는 뉴욕에 찾아갔었다. 낡아빠진 커다란 창고에서 돈도 안 되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어찌나 측은한지 돌아오는 내내 비행기에서 울적했다. 왜 이 따듯한 LA를 두고 그 추운 데서 그림을 해야 한다는 건지 원결혼해서 창고에 사는 너를 친정엄마가 보고 갔으니 그 충격이 오죽했겠느냐! 그래서 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거다.” 
긴 한숨을 토하신
그럴 리가요. 워낙 몸이 약한 데다가 오랜 여행을 하셔서.”

미국에 살면 잘 살겠지 하는 희망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친정엄마는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 애지중지 키워 유학까지 보냈더니 결혼해서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그것도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으니캐나다 여행을 취소하고 가져온 비자금을 탈탈 털어주고 가셨다
내가 일 년 후 제대로 된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그때까지만 참고 살아라.”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엄마는 서울로 가자마자 바로 돌아가셨다. 친정엄마도 서울로 돌아가는 내내 비행기에서 울며 갔을 것이 분명하다.
뉴욕 맨해튼에 이만한 스페이스, 이게 어디냐?” 
그 옛날 일본 고학 시절 거처를 못 구해 동경 우에노 공원에서 며칠씩 노숙한 친정아버지는 낙담하는 엄마와는 달리 용기를 주셨다.

그림 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혼했다는 어느 화가들의 무용담 같은 기사를 가끔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글쎄, 이혼까지 하면서…, 화가라는 직업으로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림을 고집하며 딸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부모 가슴을 후벼 팔 일일까?

누군들 그럴듯한 전시회에 연로한 부모를 초대해 효도하고 싶지 않겠는가? 젊은 시절 한때나마 화가가 되기를 꿈꾸셨던 시아버지는 화가의 길을 택한 아들의 희망을 꺾지 않고 서포트 해 주셨는데 남편의 큰 전시를 몇 달 남기고 돌아가셨다.
"우리네 인생은 학교를 마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한다. 자리가 잡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뭔가 멋진 미래가 가까이 올 것 같은 기대와 희망이 보일 즈음엔, 몸은 늙고 죽음은 가까이 와 있더구나."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던 시아버지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Friday, April 12, 2013

Tears of two mothers

I do not live with my aged in-law parents and do not give enough money, but I'm calling on the weekend to listen to my mother-in-law. I heard that when we get older, forget for a moment what just happened, but remember the old days clearly. The story of mother-in-law goes always a long way off to old.

"I went to New York, where my son lives, in the cold early winter of one year. It was so pitiful to see him crouching to make art works that was not worth money in a big old warehouse. I felt depressed on the plane all the way back. Why does he want to be a artist in that cold place instead of this warm LA?"

"The shock must have been appalled by your own mother's sight of you who married and lived in that warehouse! That's why your mother died early," she said, panting a long sigh. "That's not true. She’s so weak. And she's had a long trip."

It may not have been the hope of living well in the United States, but my own mother was very shocked to see me live. She raised me well and sent me to study abroad, but I got married and lived in a dark warehouse with a roommate

My parent canceled their trip to Canada and gave me the funds they brought. "I'll buy you a decent living place in a year, so bear with until then," she went to Seoul and died right away. It is clear that my own mother also went crying on the plane all the way back to Seoul

"This much space in Manhattan, New York, how good is this?" Unlike my disheartening mother, my father who couldn't find a place to live when he was studying in Japan gave me courage.

I have read articles in the newspapers, such as the saga of artists who divorced with intention of painting. If can eat well and live well with a job called artist, where's a better job? But will it hurt children and hurt their parents' hearts by insisting on being artist.

Who doesn't want to invite elderly parents to their own plausible exhibition? My father-in-law, who once dreamed of becoming an artist when he was young, supported his son who chose to become an artist, but he passed away only a few months before my husband's big exhibition.

"Our lives end school and work to support family. By the time it's financially stable, I see the hopes of doing what I want to do and having a wonderful future near me, but the body is already old and death is near," my father-in-law said. I cannot forget what he said.

Saturday, April 6, 2013

시작은 그럴싸했다

포도주 서너 병과 안줏거리를 차에 싣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이리저리 정처 없이 차를 몰고 목적 없이 달리다 어둑해 질 무렵 숙소를 찾아 들어가 마시는 한잔의 술맛이란!

홀랜드 터널을 지나 뉴저지로 들어갔다. 펜실베이니아를 거쳐 웨스트버지니아로 내려가 세난도 국립공원의 스카이라인을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숲 속의 모습이 별 감흥이 없다.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가을에 왔어야 하는데.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보며 숙소를 찾아 들어가야 했다. 한동안 샛길을 달리다 다행히 어둠이 깔리기 전, 숙소를 찾았다. 피곤한 몸을 술잔에 의지하고 행설수설 지껄이다 남편은 앉은 자세를 뒤로 누이더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남쪽으로 계속 가겠다는 남편을 설득해 동쪽으로 달렸다. 해군사관 학교가 있는 버지니아 애나폴리스로 가는 도중에 워싱턴DC 알링턴국립묘지에 들렀다. 묘지를 구경하고 애나폴리스로 가는 고속도로를 찾아 들어가야 했는데 한 시간가량 같은 길을 돌고 또 돌아도 찾지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운전할 때 내비게이터가 된다. 진짜 내비게이터 하나 장만하자고 해도 남편은 절대 안 한다
그것 믿고 가다 눈 속에 파묻혀 죽었다는 기사 못 봤어? 너무 전자 문명에 의지해 사는 거 좋은 게 아니야.” 
나가서 물어볼까?” 
운전하는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대답이 없다
저기 세워봐 물어보게.” 
더욱 속력을 내서 달렸다.

오래전, 아는 선배와 함께 우리 차를 타고 지인의 집을 찾아가다 길을 잃어버렸다. 남편은 계속 달리기만 했다. 내가 물어본다고 하면 더욱더 화를 내며 속력을 내는 이상한 고집이 있다. 결국, 술판이 무르익고 일어설 즈음, 지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술판에 제대로 끼지 못해 화가 난 선배는 
내가 앞으로 네 차를 타면 사람이 아니다."
당시를 상기시키며 
그때도 그랬잖아. 왜 물어보지 못하게 하는 데?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차 세워.” 
길을 물어보지 않는 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공통된 고질병이라더니남편은 끝까지 혼자 길을 찾아서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옆에 탄 사람을 지치게 한다. 2시간이 되도록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니.

애나폴리스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차에서 내려서도 각자 걸었다골목 창가에 내어 놓은 꽃들로 장식된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너무도 로맨틱해 혼자 걷기에 슬펐다. 멀리 부둣가에 선술집,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의 파도가 나를 덮치듯 지치고 숨 막히게 했다.

왜 내가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한잔의 술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내 고개는 비를 맞은 듯 숙여지기 때문이다.

Friday, April 5, 2013

The start was plausible

We left the house with three or four bottles of wine and a bag of side dish in the car. We drive aimlessly from place to place. As it gets dark, we enjoy the taste of a cup of wine in a lodging.

We passed the Holland Tunnel and entered New Jersey. Through Pennsylvania, he drove down to West Virginia and ran the skyline of Shenandoah National Park. After running for a while, there was little excitement in the forest. We should have come in autumn, when the maple is in full bloom.

We had to find a place to stay, looking at the slowly darkening sky. After running for a while on the side road, fortunately, before darkness fell, we found a lodging. Soothe our tired body with a few glass of wine, and my husband laid back his sitting position and fell asleep.

The next morning, my husband wanted to keep going south. I persuaded him to drive east. On the way to Annapolis, Virginia, where the Naval Academy is located, we stopped by the Arlington National Cemetery in Washington D.C. to see the cemetery. After then he couldn't find the highway to Annapolis. He couldn't find the way, so he drove the same road again and again for about an hour. The problem began here.

I become a navigator when my husband drives. Even if I ask him to buy a real navigator, he never buy it. “Have you ever seen an article that someone believe in the Navigator was buried in the snow and died? It's not a good idea to live too much on electronic civilization.” he said, vehemently opposed it. "Shall I go out and ask?" He had no answer. My husband who drives hates it the most. 'Stop over there. I will ask,' he ran at greater speed.

A long time ago, my husband got lost the way while visiting friend's house with a acquaintance. He kept running. Whenever I say "shall I go out and ask," there is a strange stubbornness that he angry and speeding. In the end, by the time the drinking party was over, we were able to reach the house. The angry acquaintance that rode with us said, "I'm not a person if I take your car in the future."

Reminding him of the time, I said, "Why won't you let me ask? Pull over the car." I heard that not asking for directions is a common chronic disease among Korean men inherited from their ancestors.

My husband tires the person next to him to recover his self-respect by finding his way to the end alone. He hasn’t found a way out in two hours.

We arrived in Annapolis in silence and walked out of the car. We walked apart. Pastel-colored houses, decorated with flowers from alley windows, were so romantic. A pub far away from the dock, and a vast expanse of sea that stretched beyond it, made me exhausted and stifled.

Why should I drink? The moment I pour a glass of alcohol into my mouth, my head is bowed like fallen leaves in the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