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첼시로 가는 길 트래픽이 몹시 심했다. 서울에 사는 동기 동창이 뉴욕 화랑 밀집 지역인 첼시에서 개인전을 했다. 드디어 한국에서 잘 나가는
작가 라더니 뉴욕까지
왔구나! 가난한 화가도 성공해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며 자랑스러웠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밀려든 관람객에 둘러싸여 있는 동기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훤하게 변해 있었다. 그를 멀리서 바라보며 대학 시절로 되돌아갔다.
미술 대학에서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는 달리
가난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그는 더욱 가난했다.
그가 등록금 낼 때면 다른 남학생들이 내일처럼 걱정과 수심에
차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 실기실에서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 갈 곳이 없어서였다.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불렀다. 그렇게 말이 없고 우울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던 그가 어찌나 웃기는지 우리는 밤새도록 떠들었다.
“야, 걔 있잖아.’
기억력을 더듬으면서
‘걔 있잖아’
를 연발하며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우리 동기들이 다 아는 그의 절절한 사연, 이루지 못한 옛사랑 이야기가 결국엔 술기운에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는 우리 일 년 후배와 오랫동안 사귀었다. 그러나 가난한
화가라는 이유로 그녀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딸과 같은 공부를 했던 그를 비하하는 모습에 얼마나 허탈했을까? 결국, 그녀는 온 집안의 반대를 극복 못 하고
돈 많은 남자를 선택했다.
결혼식장에 찾아간 그는 양팔을 잡아 끌어내는 그녀의 형부들에 의해 쫓겨났고 그녀는 결혼하고 외국으로 떠났다. 그 상처로 젊은 나날을 괴로움 속에서 보냈다. 오래된 일이지만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을 들으며 모두가 조용해졌다.
허나 인생길이 그리 순탄하기만 할까. 그녀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성공한 화가로 이름이 알려지자 전시회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그에게 전화해서 만나자는 것을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가난하고 희망이 없었던 화가를 믿고 결혼해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부인에게 도리가 아니라서 만나지 않았단다.
이루지 못한 옛사랑을 말한다기보다는 가난해서 받았던 옛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은 것에 대한 분노를 말하고 있었다.
“너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 한 거야. 복을 찬 거야.”
“너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 한 거야. 복을 찬 거야.”
우리는 합창으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결혼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알아들었어. 알아들었느냐니까?”
친구는 술에 취해
가슴에 맺힌 한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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