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옆에 있는 한국 여자가 손을 들어 양복 입고 나오는 남자를 반기길래 서울에서
오는 비행기가 도착했느냐고 물었다.
“우리 남편은 일등석을 타고 와서 잘 모르겠는데요.”
얼떨결에 ‘아! 일등석, 그렇지 일등석은 일반석보다 빨리 날지.’ 남편과 팔짱을 끼고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아차 싶었다.
같은 비행기잖아!
젊은 혈기에 세상을 둘러보겠다고 집 떠난 아이는 온몸이
햇볕에 그을린 동남아시안 모습으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뒤늦게 나왔다. 편하냐 불편하냐의 차이지 일등석이나 일반석이나 같은 속도로 나르지 않는가!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급하게 서울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해 공항에 갔다. 항공권을 스크린하고 탑승하러 가는 긴 통로를 지나다 먼 친척을 만날 줄이야. 매우 반가웠다.
“서울 가세요? 잘됐네요. 긴 여행 이야기하면서 가면.”
“전 일등칸을
타는데요.”
“아 그러세요.”
“알래스카에서 내려서 이야기해요. 그럼 이만.”
왼쪽
일등석 통로로 들어갔다. 나는 오른쪽 일반석으로 들어가며
“기다릴게요.”
나는 알래스카 공항에 잠깐 쉬었다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먼 친척으로 한국에서 어렵게 살다 꿈의 나라
미국에 와서 자영업을 열심히 일궈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이다. 가족모임에서 서너 번
만났다. 만날 때마다 약간 비하하는 말투로
“아직 그곳에 사세요?”
가 그녀의 인사다. 오래전 그녀는 난방도 없는 나의 브루클린 스튜디오에
왔었다. 그때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그녀의 기억엔 내가 항상 추운
스튜디오에서 떨고 있는 모습으로 각인된 듯하다.
미국의 시작은 루저들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고국을 떠날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의 모자람을 채워보려는,
한마디로 잘 살아보겠다는 각오로 떠났다. 그런데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지난날의 어려움을 되돌아볼 틈도 없이 그동안 쌓인 천박한 싸구려 선민의식을 곳곳에 내뱉는다.
나 또한 남들 앞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알량한
행동과 말들이 여러 사람의 가슴을 후비고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남들이 나에게 퍼붓는 우쭐거림은 그리 화낼만한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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