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즈음 술 많이 마시지?”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신문에 난 내 글을 읽고 나의 사는 모습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친구의 우스갯소리를 듣고 아차 싶었다.
살면서 술 먹어야 할 일이 많았다. 어릴 적엔 아버지의 끊이지 않는 바람으로 속상해서 마시고, 결혼 전엔 결혼 못 해 괴롭고 외로워서 마시고, 결혼 후엔 생활고에, 지금은 그래도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고 마신다. 그러니 내 인생에 술 이야기 빼면 글 쓸 소재가
없을 만도 하다.
엉뚱한 짓을 많이 해 학교 다닐 때에는 반성문을
많이 썼다.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반성문을 쓰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눈 온다~.’ 소리치며 달려나가 눈꽃을 입에 담으려고
텅 빈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5월에 눈은 웬 눈! 아카시아 흰 꽃이
함박눈처럼 쏟아졌다.
나의 반성문은 그 다음 날로 이어져 길게 써야 했다. 미국에 와서는 무척이나 나를 예뻐하는 친정아버지의 사랑에 응답하고자 일주일에
2번 정도 열심히 편지를 썼다. 반성문과 편지는 그런대로 쓴다. 하지만 철학적이고 심오한 글은 쓸 줄 모른다.
기억력이 신통치 않아 그나마 조금 알고 있던 상식도
적당히 써먹으려면 제때에 떠오르지 않아 애먹는다. 글 쓰는 일에 도움이
될까 해서 책은 보지만 커다란 덩어리로는 기억하는데 세세히 분석하거나 지식으로는 기억하지 못한다. 여행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자주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느끼는데 일일이 방문했던 곳을 역사적으로
기억하기란 어렵다.
가끔 오프닝에서 독자들에게 ‘글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디론가 숨고 싶다. ‘그냥 수다를 글로 썼을 뿐인데’ 하는 미안함에. 아직도 반성할 일과 술 마실 일이 많아서인지 소재의 궁핍함이 없이 글을 계속
쓰고 있긴 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대로 시련과 외로움이 있다. 나의 어두웠던 기억을 독자들과 공유하며 잠시나마
나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음을 나누고 싶다. 생을 살면서 받은 고통을 그리고 각자가 가진 핸디캡을 유모가 자아내는 웃음으로 치유하여 어둠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밝게
시작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흥미롭다.
눈먼 시각장애인에게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떤 느낌이냐?’고 누군가 물었다. 시각장애인이 대답하길 ‘나처럼 내가 살아온 생만큼 당신도 눈 감고 있어보면 내 느낌을 알 수 있다.’고 재치 섞인 유모로 응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나의 고통을 고통으로 독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유모와 재치로 고통을 달래는 이야기로 쓰고 싶은데…
나의 일기의 한 페이지를 타인과 공유한다는 묘한 기분에
부끄럽긴 해도 나는 오늘도 이렇게 100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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