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 언덕에 앉았다 갈까요?”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산뜻하게 입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옆 모습이 제임스 딘처럼 매력적이다. 햇볕에 뽀송뽀송 갓 말려 입은 듯한 그의 옷에서
신선한 향내가 났다. 우리는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언덕에 앉아 있었다. 그가 일어나 언덕을 내려갔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그럼 이만 가 볼게요.”
“네 그럼 저도.”
갑자기 나는 돌아서 가는 그의 등에 대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
“와인 한잔 안 할래요? 제가
살게요.”
곧 가겠다던 그가 술집을 부지런히 찾아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은은한 촛불 속에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부딪치며 건배했다.
어제저녁이 변변치 않았는지 배가 고파 대학 때 잠깐 만났던 남자와 밥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고상하게 와인 마시는 지난 밤 꿈 내용이다.
왜 꿈속의 그 남자는 대학 시절 나와 만날 때마다 점심 후 3시에 만나 저녁 전 6시에 헤어지곤 했는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와 생각해도 궁금하고 섭섭하다.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얀 얼굴에 말끔한 옷차림을 한 깔끔한 멋쟁이였는데 한 번도 식사를 같이해본 적 없이 만나다 흐지부지 헤어졌다. 소화 불량증이라도 있었나? 내가 함께 밥을 먹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기에는 연락도 자주 하고 여러 번을 만났는데.
왜 꿈속의 그 남자는 대학 시절 나와 만날 때마다 점심 후 3시에 만나 저녁 전 6시에 헤어지곤 했는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와 생각해도 궁금하고 섭섭하다.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얀 얼굴에 말끔한 옷차림을 한 깔끔한 멋쟁이였는데 한 번도 식사를 같이해본 적 없이 만나다 흐지부지 헤어졌다. 소화 불량증이라도 있었나? 내가 함께 밥을 먹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기에는 연락도 자주 하고 여러 번을 만났는데.
“왜 우리는 항상 점심 후에 만나서
저녁 먹기 전에 헤어져야 했나요?”
꿈속에서도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결혼 전, 남편은 맨해튼 브로드웨이 가발 도매상에서 박봉으로 일하면서도 밥도 사주고
술도 잘 사줬다. 가끔은 요리도 사주고, 소호에 있는 고급 카페에도
데려갔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세탁기에서 갓 빨아 입은 눅눅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밥과 술을 잘 사주는 것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술 먹자고 연락이 오면 냉큼 나가곤 했으니.
결혼 후, 알고 보니 론(loan)이 많았다.
나에게 술 사주느라고 학생론을 갚지 못했다는 것이다. 론 없이 공부한 나는 억울했지만
내가 연애 시절 먹은 밥값과 술값이기에 시집에 하소연도 못 하고 열심히 갚을 수밖에 없었다.
친정아버지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공짜 좋아하지 마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약 공짜가 있다면 후에 몇 배로 갚아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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