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8, 2012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저기 저 언덕에 앉았다 갈까요?” 
청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산뜻하게 입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옆 모습이 제임스 딘처럼 매력적이다. 햇볕에 뽀송뽀송 갓 말려 입은 듯한 그의 옷에서 신선한 향내가 났다. 우리는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언덕에 앉아 있었다그가 일어나 언덕을 내려갔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그럼 이만 가 볼게요.”
네 그럼 저도.” 
갑자기 나는 돌아서 가는 그의 등에 대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
와인 한잔 안 할래요? 제가 살게요.” 
곧 가겠다던 그가 술집을 부지런히 찾아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은은한 촛불 속에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부딪치며 건배했다.

어제저녁이 변변치 않았는지 배가 고파 대학 때 잠깐 만났던 남자와 밥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고상하게 와인 마시는 지난 밤 꿈 내용이다. 

왜 꿈속의 그 남자는 대학 시절 나와 만날 때마다 점심 후 3시에 만나 저녁 전 6시에 헤어지곤 했는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와 생각해도 궁금하고 섭섭하다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얀 얼굴에 말끔한 옷차림을 한 깔끔한 멋쟁이였는데 한 번도 식사를 같이해본 적 없이 만나다 흐지부지 헤어졌다. 소화 불량증이라도 있었나? 내가 함께 밥을 먹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기에는 연락도 자주 하고 여러 번을 만났는데
왜 우리는 항상 점심 후에 만나서 저녁 먹기 전에 헤어져야 했나요?”
꿈속에서도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결혼 전, 남편은 맨해튼 브로드웨이 가발 도매상에서 박봉으로 일하면서도 밥도 사주고 술도 잘 사줬다. 가끔은 요리도 사주고, 소호에 있는 고급 카페에도 데려갔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세탁기에서 갓 빨아 입은 눅눅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밥과 술을 잘 사주는 것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술 먹자고 연락이 오면 냉큼 나가곤 했으니.

결혼 후, 알고 보니 론(loan)이 많았다. 나에게 술 사주느라고 학생론을 갚지 못했다는 것이다. 론 없이 공부한 나는 억울했지만 내가 연애 시절 먹은 밥값과 술값이기에 시집에 하소연도 못 하고 열심히 갚을 수밖에 없었다.
친정아버지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공짜 좋아하지 마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약 공짜가 있다면 후에 몇 배로 갚아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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