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차 로마 터미널 가는 거 맞아요?”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황에 내려 막 떠나려는 기차 마지막 칸을 잡아타며 남편에게 물었을 때였다.
“엄마~”
갑자기 앞좌석에서 우리 아이가 벌떡 일어나며 부르는 게 아닌가. TV 드라마 속에서나 우연히 만나는 일은 있어도 실제로 이런 먼 타국에서 아이를 몇 달 만에 만나다니!
한 학기를 플로렌스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연휴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보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과 베니스에서 나흘 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반가워할 틈도 없이
“엄마 나 지갑 잃어버려서 돈 없어요.”
“유로로 바꿔 줄 테니 호텔까지 함께 가서 점심 먹자.”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너무 피곤해서 그냥 가겠단다. 아이에게 달러를 쥐여주고
"쌀쌀 맞은 놈 같으니라고"
투덜대면서 터미널에서 헤어졌다.
나흘 후 우리 부부는 아이를 베니스에서 만났다. 지도를 보며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던 로마 여행과는 달리 아이가 안내하는 데로 따라다니니 편했다. 어떤 상항에서도 아이는 부딪침이 없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상항을 받아 드렸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니니?”
물어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에너지 낭비하지 말아요."
쿨한 척했다. 집에서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을 보며 거리감을 느꼈다.
플로렌스로 함께 오자마자 아이는 자기가 필요하면 이메일 하라며 바삐 학교로 가 버렸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다닥다닥 붙은 붉은 지붕 속의 수많은 애환을 생각하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우리 부부는 말없이 창가에 앉아있었다.
다음날,
플로렌스에서 기차로 두 시간 이상 떨어진 바닷가 절벽 풍광이 좋다는 싱커테르 마을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 기차가 피사 정류장에서 40분 이상을 멈추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며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그때 한 동양 남학생이
“한국 사람이세요?”
했다. 우리는 학생의 안내로 기차를 갈아탔고 그 남학생은 오른쪽 앞, 우리는 왼쪽 뒤 자석에 대각선으로 앉았다. 학생은 엄마를 위해 산 선물인지 손지갑을 꺼내 요리조리 살피고 아빠를 위한 벨트를 풀었다가 감았다 하는 모습이 어두운 밤 창가에 정겹게 비쳤다. 우리 부부가 내리려고 잘 가라는 눈인사를 하니 플로렌스 어디로 가냐며 물었다. 플로렌스도 산타마리아 정류장과 또 다른 정류장이 있다며 한 정거장 더 가야 한단다. 학생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는 밤길을 헤맸을 것이다. 역에서 내려 함께 걸으며 우리가 잘 가는가를 확인하는 듯 가지 않고 한동안 서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행 중 내내, 혹시나 그 친절한 학생을 다시 만나지 않을까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우리 아이와도 더는 만나지 않았다.
"차오, 뉴욕에서 보자."
이메일을 보내고 플로렌스를 떠났다.
로마 터미널 가는 기차선로 변에 듬성듬성 핀 개 양귀비의 짙은 주홍색이 눈을 찌를 듯 하늘거렸다. 그 선명한 주홍색은 공회당 계단에서 동료의 칼에 피를 뿌리며 죽은 시저의 혈흔인 양 폐허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자극 했다. 슬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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