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뜨거운 여름을 밀며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서늘한 바람 소리에 가슴이 아려온다. 어느새 긴 소매로 갈아입은 사람들의 웅크린 뒷모습을 보면서 뭔지 모를 먹먹함, 그리움으로 아련해진다.
잡을 수 없이 또 한해를 혹독한 겨울에 내 주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나는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서늘한
가을바람만 불면 슬퍼했다. 허약했기 때문에 더욱더 가을을
타지 않았나 싶다. 공기 좋은 곳에서 하루 세끼 따듯한 밥을 먹이면 건강이 회복될 것이라는 엄마의 바람으로 시골에 보내졌다.
들과 산을 거닐다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며 놀다 바위 위에 누워
책을 읽곤 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면 조금은 통통해진 모습으로 서울집에 돌아오곤 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원달마센터를 접할 수 있었다. 숲을 뒤로하고 펼쳐진 들판 위에 단순하게 나무로만 지어진 사각형 모습이
나의 어릴 적, 자연에 대한 기억을 자극했다. 그 모던한 나무 상자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뉴욕에서 3시간가량 올바니 가는 곳, 규칙에 따라 첫날부터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노블 사일런스’에 들어갔다. 입을 다물자 눈이 활짝 트이고 멀리 녹음이 우거진 숲이 가까이 와 있었다.
귀가 열리자 다양한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귀가에 맴돌았다.
들판을 지나 숲 속을 거닐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온갖 풀벌레들이 화들짝 날아올라 뒤를 따랐다.
쉬지 않고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새들도 다정하게 응답이라도 하는 듯 재잘거렸다.
멀뚱히 쳐다보는 사슴과 마주치자 멈칫거리더니 슬그머니
식솔을 데리고 수염이 훌훌 날리는 옥수수 밭쪽으로 사라졌다. 숲 사이로 부는 바람은
들고 있는 빈 물병에 잠깐 들어왔다 나를 놀리듯 ‘윙’ 소리를 내며
달아났다.
구릉진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반들거리는 돌 사이로
속삭이듯 흐르는 물소리가 ‘잘 왔어. 잘 왔어.’ 조잘조잘 대며 반겼다. 맑은 유리잔
같은 물에 손을 담그다 고개를 드니 어두컴컴한 숲 속의 고목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번다한 도시 속의 찌든 내 시야를 말끔히 씻어줬다.
넓은 들판에 내리쪼이는 햇볕에 풀들은 이슬을 털고
여름의 막바지를 느긋이 즐긴다. 나도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으로 돌아갔다.
목탁소리가 산사를 울리면 명상을 하러 불당으로, 또 다른 시간의 목탁소리는 고픈 배를 달래는 공양시간이다.
채소로만 준비된 정갈한 음식은 어릴 적 시골에서 먹던 그 맛이다.
케스킬 산을 안은 산사에 앉아 저무는 햇살 속으로
잠겼다. 녹색 산이 붉은 노을 밑에서 푸른 색을 띠다 검은색으로 변했다.
붉어진 해가 꼴깍 넘어가고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명상은 심플해진 내가 빈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다
더 넓은 공간을 만나고 드디어는 자연으로 돌어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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