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다. 머리가 욱신거리면서 구역질이 난다. 토하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죽을 것만 같다. 죽기 전에 이 넓은 세상을
언제 다 볼 것인가! 가자. 프랑스 파리로.
예약한 파리행 비행기 표를 찾아서 1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13층에서 덜컹하며 반 층 정도 밑으로 떨어지더니 12층과 13층 사이에 멈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닫쳤다 하는 게 아닌가! 열린 문 앞은
회색 벽으로 막혀 나갈 수 없이 혼자 갇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지? 아무렴 배운 사람답게 찬찬히 침착하게 행동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얼마 동안 갇혀 있을 것인지? 한 시간, 두 시간, 아니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관에 들어가듯 MRI 검사를 했다. 40분 동안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땅이 좁은 홍콩은 관을 세워서 묻는다고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를 한 기억이 스쳤다. 엘리베이터 안이 MRI 속처럼 점점 조여드는, 관속에 갇힌 듯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다. 이 버튼 저 버튼 마구 눌렀다.
스피커에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갈 수 있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는가! 처음에는 점잖게
“I can not get out of here. I am in the middle
of the floor.”
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고 시간만 흘러갔다.
“Let me get out
of here. Is there anybody out there?”
목청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드디어 일 층으로 내려가는가 보다. 웬걸,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스피커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고 적막함이 계속됐다. 겁이 덜컥 났다.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빨리 문 열어, 안 열어.”
마구 질러 되기
시작했다. 목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드디어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듯 악을 썼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움직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11층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도로 닫히기 전에 후다닥, 관을 땅에 묻기 전에 관뚜껑을 열고 뛰어 나오듯 밖으로 나왔다. 이상하리만치 아무도
없고 조용했다. 크기만 다르지 엘리베이터 사이즈를 확대해 놓은 듯한
고요하고 적막한 긴 복도만이 보일 뿐이다.
나 혼자만 난리 치고 모든 것은 그대로였단 말인가! 서운했다. 누군가에겐가 한바탕 악을 써대며 속을
풀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니! 몰상식하게
소리를 질러 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빨리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것만이 상책이다. 건물 밖으로 잽싸게 뛰쳐나왔다.
밖은 밝고 화창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도 모른 채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목이 칼칼했다. 쏘윈도우에 비친 헝클어진 내 모습은 정신 나간 여자가 따로 없었다. 혹시나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방팔방을 휘둘러 보면서
바삐 걸었다. 다리에 발동기를 단 듯 몸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머리의 통증도 사라졌다.
맨해튼 5애브뉴를 힘찬 걸음으로 걷고 있는 나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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