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종일 내렸다. 브루클린 나소 애비뉴 G 트레인 입구에 한 남자가 우산도 쓰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두꺼운 돋보기안경 너머로 눈을 크게 뜨고 누군가를 찾는지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꿰뚫어지라 보고 있다. “하이” 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봐서 돈 떼먹고 도망간 사람을 찾는 듯했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로 사채업자다. 우리는 그를 1987년에 처음 만났다. 자리 잡아 살아보려고 자금을 구하던 중 그를 소개받았다. 이자율은 1부로 개인이자 치고는 좋은 편이다. 돈을 빌리고 5년 동안 잘 갚았더니 언제든지 꿔주겠다고 했다.
프랭크는 건물 여러 채와 현찰이 많은 싱글이다. 그와 통화하기란 쉽지 않다. 돈을 아끼려고 받기만 하고 걸 수는 없는 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그를 만나려면 아침 일찍 집으로 찾아가야 했다.
프랭크는 항상 같은 조끼와 양복을 입었다. 말이 양복이지 몇십 년은 입었는지 나달나달했다. 옷에서는 악취가 났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기름에 찌든 양복은 빗방울도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반들거렸다.그의 가슴은 방탄조끼를 입은 듯 부풀어 있다. 조끼와 양복 주머니엔 여러 개의 수첩이 꽂혀있기 때문이다. 사채기록인 수첩들은 고무줄로 꽁꽁 묶어져 있어 고무줄을 푸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우리 부부는 고무줄을 풀고 수첩에서 우리의 기록을 찾을 때까지 악취를 참고 기다려야 했다.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쯤이야.
수첩을 꺼내면 그의 심각한 표정이 갑자기 행복한 미소로 바뀐다. 돈을 모으고, 빌려주고, 거기서 생기는 이자로 불어나는 재산을 보니 즐거운 모양이다. 돈 세는 일에만 빠져 사는 그는 돈 쓰는 즐거움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젊었을 때 그는 동네 영화관에서 티켓 받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극장에서 일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사채놀이를 해서 지금의 재산을 일구었다. 여자를 사귀고 싶어도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잃을까 두려워 결혼도 하지 않았단다. 평생 혼자 외롭게 살며 가까이 지내는 친구도 일가친척도 없단다.
어느 날부터인가 체크를 보내도 돈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6개월쯤 지나자 그의 변호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앞으로는 ‘프랭크 비로식 에스테이트’로 체크를 보내라고. 그가 죽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가까이도 하지 않은 필라델피아에 사는 먼 친척 여동생에게 상속됐단다. 새 양복 한벌 입어 보지 못하고 모은 그 많은 재산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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