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옆에 한국 할머니가 사셨다. 복도에서 만나면 몇 마디 인사를 나눌 정도다. 어느 날 인사를 나누다가 잠시 서울에 다녀온다고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에 연락이 왔다.
"아이 아버지가 미국에 자리 잡으러 먼저 왔어요. 아이 엄마는 남편이 이제나저제나 불러주기를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자 남편 찾아서 아이를 데리고 뉴욕에 왔다는군. 남편이 사는 주소로 찾아가 여러 날 아파트 문가에서 기다리며 밤샘을 했지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네.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다 재혼할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가 아이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니 어째겠어. 남편 부모에게 아이를 보내야지. 아이를 서울 갈때 데려가 줬으면 하는데."
아이의 엄마는 슬픈 모습으로 세상모르고 자는 아이를 안고 공항에 나왔다.
"김포공항에 아이를 데리러 할아버지가 나올거예요. 잘 부탁해요."
아이를 내게 안겨주며 울면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자던 아이가 깨어 울며 엄마를 찾았다. 아이 이름을 부르며 달랬다. 비행기 안이 어두워 엄마 얼굴을 확인 못 한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알래스카에서 잠시 내렸다 타야 했다. 불이 켜지자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너 자꾸 울면 엄마에게 데려다주지 않는다.”
반 협박 조로 달랬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울음을 그쳤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감지 한 아이는 자기 이름을 아는 아줌마를 잊어버리면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내 눈치를 보며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와 나는 꽤 친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아팠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친할아버지에게 가지 않으려고 아이는 울며불며 나에게 매달렸다. 갓난아기 때 헤어진 할아버지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는가. 잠에서 깨어나니 엄마는 없고, 자기 이름을 아는 아줌마가 ‘엄마에게 데려다준다’고 해서 말 잘 듣고 따라온 아이였다. 믿고 따라온 아줌마는 거짓말을 하며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자기를 맡기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내 치맛자락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붙들린 아이는 돌아서 가는 나를 향해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엄마, 엄마”
부르며 내게 오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의 몸을 반으로 자르는 것과 같은 큰 상처를 준다고 한다. 난 그 아이에게 주는 상처에 공범자가 되었다. 그런 일을 하겠다고 자초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아이가 어려서 기억을 못 하기를
바라지만, 만약 기억한다면, 나의
거짓말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가장 커다란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지금쯤 서른 살이 됐을 아이가 어디선가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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