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브루클린의 한 옷 가게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였다. 젊은 남자가 여자들이 신는 살 색 스타킹을 머리 위에 돌돌 말아 얹어 놓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별 미친 녀석이 다 있네!’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속으로 웃었다.
“돈 내놔!”
“돈 내놔!”
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던 그 남자가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누런 봉투에 감아진 총을 나에게 들이댔다. 영화에서만 봤던 스타킹을 쓴 일그러진 얼굴을 실제로 보니 너무 이상하고 우스웠다. 어떻게 일그러졌나! 눈을 가늘게 뜨고 들여다보는 내 얼굴 가까이 봉투를 들이밀며
"돈을 안 주면 죽일 거다!”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과연 봉투 안에 총이 들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과연 봉투 안에 총이 들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야 웃기지 마, 놀고 있네.”
봉투를 확 낚아채려고 나는 손을 뻗었다. 오히려 강도가 놀라 나를 밀치고 금전등록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돈을 집히는 만큼 갖고 달아났다. 달아난 도둑을 쫓아서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려는데 점원들과 쇼핑하던 손님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의 한 점원은 벌벌 떨며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겁도 없이 왜 그랬냐, 미쳤느냐.”
“겁도 없이 왜 그랬냐, 미쳤느냐.”
사람들이 난리였다. 과연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 마디로 무지가 사람 잡을 뻔 했다.
“돈을 달라면 무조건 주지 왜 그랬냐?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돈을 달라면 무조건 주지 왜 그랬냐?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옷 가게 주인이 놀라 달려와 핀잔했다. 일주일 전에도 옆집 피자 가게에 강도가 들어와 돈을 안 주다 총에 맞아 죽었단다. 이런저런 소리를 듣고 나니 무서운 사건이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누웠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배는 점점 심하게 아팠고 하혈을 했다. 임신 3개월 된 아이가 떨어진 것이다. 아픈 배를 쥐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엔 병원에 실려 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벌어먹여 살릴 테니 집에 있어”
다음날 남편은 스튜디오 문밖의 자물통을 채우고 직장을 구하러 나갔다. 가게 키를 갖고 왔는데 출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주인아저씨가 와서 창밖으로 열쇠를 던져 주는 것으로 나의 직장 생활은 끝났다.
결혼 초 그 사건 이후, 나는 전업주부가 됐다. 남편이 그때 꽤 놀랐나 보다. 화가 남편이 그림 그린다고 아내 돈 벌러 내보냈다가 송장 치울 뻔했다. 그림 그리는 일도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는 일이고, 입에 풀칠은 하고 나서 하는 일이다. 뭐 그리 대단한 그림이라고 아내와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하겠는가.
그 후로도 생활이 어려워 직장을 잡아 보려고 신문을 뒤적거릴 때마다
“집에서 아이들이나 잘 키우라는데.”
남편은 화를 내곤 했다. 화가를 남편으로 둔 여자가 집에서 푹 쉬고 있는 사람은 아마 나뿐일 거다.
더 큰일을 당할수도 있으셨는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맞아요, 남자들은 그런 큰 일이 있을때 삶의 태도가 확 바뀌는 것 같습니다. 철이 든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ReplyDelete그럼 포스팅에 첨부하시는 삽화는 화가남편분이 그리신 건가요?
블로그주인장 가정도 타향살이신 것 같은데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