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6, 2024

주홍색 백팩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은 잊어버리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Maya Angelou가 한 말이다. 나는 이 인용문을 입증하려는 듯 선거 날만 되면 잠깐 스쳤던 한 여자를 떠올리곤 한다. 그녀의 등에 얹혀 그녀를 짓눌렀던 주홍색 백팩의 암울한 덩어리는 개 양귀비 핏빛으로 뇌리에 문득문득 떠오르며 요즈음도 그녀는 그 무거운 주홍색 백팩을 메고 다닐까? 궁금하다.


오래전, 나는 쪼들리는 불안한 삶을 하루하루 버티며 예비 선거와 총선거 당일 직원으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야 하는 장시간 노동이지만, 적지 않은 급료를 받을 수 있는 두 날 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어느 해 11월 초, 화요일 총선거 날이었다. 퀸스 초대 교회 근처 어느 고등학교 투표소로 기억한다. 그날 그곳에서 나는 선거 당일 직원으로 나온 그녀를 만났다. 둘의 나이가 비슷해서였는지 선거 오전 중 이미 통성명을 트고 친해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러 나갔다. 바윗돌 같은 주홍색 가방이 그녀의 몸을 누르고 뒤로 밑으로 당기며 등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무너지지 않을 자세로 어깨를 구부리고 백팩을 끌어당기며 보폭을 넓게 내디뎠다. 


근처 중국집에 들어갔다. 그녀는 가방이 자기의 분신인 양, 옆 의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새벽부터 찬 공기를 씐 우리 둘은 몸을 녹이려는 듯 웨이트리스가 다가오자 동시에 짬뽕을 외쳤다. 나는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못 먹고 남겼다. 그녀는 며칠을 굶은 듯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베큠클리너가 흡입하듯 단숨에 먹어 치웠다. 그녀의 시선이 내가 남긴 붉은 짬뽕에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꽂혀 있었다. 나는 먹기 전에 덜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녀는 잘 먹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운 것인지 남겨진 짬뽕이 아까운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짬뽕을 순식간에 해치운 그녀의 손이 가방끈을 꽉 잡고 있었다.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녀요?”

“이 가방 안에는 나의 중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요.”

“중요한 물건이라면 더욱더 집에 둬야지.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무겁지 않아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데 내 물건을 뒤지고 손대는 것 같아요. 무겁지만, 이렇게 가지고 다니는 것이 마음 놓여서.” 


‘그 무거운 주홍색 백팩이 당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짓누르며 육신을 변형시킬 텐데.’라고 나는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주홍색 백팩을 당연히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로 굳어진 그녀의 비쩍 마른 몸과 어두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