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언짢아지며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대답이다. 나도 친정아버지와 여행할 때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누구를 탓하랴. 다 내 탓이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부산 서면에 갔다. 첫날부터 남편은 해물탕집으로 가자고 우겼다. 뉴욕서 맛본 해물탕과는 모습도 맛도 달랐다. 온갖 해물을 넣은 커다란 솥이 불에 올려졌다. 살아 숨 쉬는 해물들이 움직거렸다. 아줌마가 가위로 꿈틀거리는 낙지를 몬도가네식으로 마구 잘랐다. 우리는 식욕을 잃고 조용해졌다. 남편 혼자서 부어라 마셔라, 신나서 떠들었다. ‘아빠가 여행경비를 다 지불하니까.’ 아이들은 서로 말하며 아빠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KTX를 타고 30분 만에 경주에 갔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둥근 거대한 왕릉이 신기했다. 세상천지에 이런 모습의 고적지는 없을 것이다. 선조들과 지나친 전생을 둘러보는 느낌이랄까? 숙연해졌다. 안압지를 둘러보고 숲속에 누워 쉬려고 했다. 불국사는 꼭 봐야 한다고 급히 불국사로 향하는 남편 등에 대고 “아이고 여행은 고행이구나!” 내가 외쳤다.
불국사에 도착하자 엄마 따라 절에 들락거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와 스님이 한동안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면 엄마가 시줏돈을 내밀었다. 스님은 우리 가족 이름이 적힌 등을 천장 밑에 매달았다. 나는 옆에서 엿듣다가 스님이 바쁜 틈을 타서
“엄마, 왜 스님에게 돈을 듬뿍 주는 거야?”하고 끼어들었다.
“어른들이 하는 일에 조그만 것이 참견이나 하고.”
야단맞고 사찰 마당으로 쫓겨나 반찬 두 가지와 국이 나오는 맛있는 절밥을 기다리며 우리 엄마 예쁜 하얀 고무신을 다른 사람이 신고 갈까 봐 지키며 놀았다.
그 옛날 엄마와 갔던 사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월 초파일도 아닌데 절 안이 무지개색으로 울긋불긋, 절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현란하다. 마당 이곳저곳에 신자들의 이름이 적힌 꼬리표가 달린 국화 화분이 널려있다. 지붕 밑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에 세운 기둥에 화려한 깃발들이 하늘을 가렸다. 곳곳에 보살들이 앉아 시주받았다. 그들을 관리하는 우아한 보살이 시주할 만한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모습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즈니스 하느라고 바빴다.
어제 갔던 양산에 있는 통도사도 야단법석이어서 사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개울을 끼고 걷는 통도사 가는 길은 좋았다. 한적한 흙길을 신발 벗고 걸었다. 발바닥이 무척 아팠지만, 몸에 좋다길래 해봤다. 막상 사찰에 들어서니 불국사와 마찬가지로 무지개색 난발이 눈살을 찡그리게 했다. 물론 금전 없이는 사찰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건물이 가릴 정도로 시주를 받은 쪽지가 사방팔방에 나부끼는 데는 사진에서 본 고적한 사찰 모습과 전혀 달랐다. 하기야 그 오랜 수난의 세월을 버티며 향화를 지킨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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