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이었다. 남편 손에는 빨간 우산이 들려있었다. 나는 독일 쾰른 대성당 옆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줄 서 있는 사람 중 한 동양 여자가
“‘한국 사람이세요?”
“어머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반가워요. 혹시 바이킹 크루즈에 타지 않았나요?”
내가 물었다.
“네. 배에서 봤는데 하도 조용히 두 분만 식사하기에 말 걸지 않았어요. 우리 함께 식사해요”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니신 것 같아 말 걸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날 그녀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녀는 앨라배마에서 왔고 남편은 미국 사람이다.
“어디서 왔어요?”
“뉴욕에서.”
“무슨 장사 하세요?’
“장사하지 않아요. 우리 둘다 화가예요.”
“뉴욕의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장사하는 줄 알았는데.”
“네 먼젓번 배에서도 미국 할머니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서 아티스트라고 했더니 네일 아티스냐고 해서 웃었어요. 외국인 대부분도 코리언은 다 장사하는 줄 알아요.”
“이 배 안에서 가장 젊은 분 같아요.”
내가 말하자
“제 얼굴 다 뜯어고친 거예요. 얼굴에 페인트칠도 엄청나게 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성형한 줄 몰랐어요.”
성형도 자연스럽고 화장도 티 나지 않게 잘했다. 톡 나온 뒤통수에 질끈 묶은 풍성한 머리숱이 부럽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다, 배도 나오지 않고 날씬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얼굴을 고칠 수만 있다면 나도 갈아엎고 싶다.
“당신도 확 보수공사 하지 그래.”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왜 자꾸 얼굴을 보수공사 하라는 거야. 나 쳐다보기가 그렇게 역겨워?”
“한국에 가서 눈 좀 크게 해. 그 작은 눈으로 잘 보여?”
“눈이 나빠져서 보이지 않지. 작아도 볼 것은 다 본다고. 눈 성형보다 급한 것이 백내장 수술이야.”
“내 남편 무뚝뚝하게 말이 없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자랑 많이 해요.”
내가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가 덧붙인다.
“내 남편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걸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조잘조잘 시작해서 종일 조잘거려요.”
그녀의 남편이 내 남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로채서 떠든다. ‘자기 집 크기가 7000 스케어 핏에 포르쉐 차 컬렉터로 한 때는 9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4대가 있다나. 그 많은 차가 다 들어갈 수 있는 차고가 있고 차를 올리고 내리는 리프트까지 있단다.
그들과 저녁을 두 번 먹은 후 남편이 말했다.
“나 그 팀과 밥 먹기 싫어"
“그러지 마! 평생 먹는 것도 아닌데. 난 그 여자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 내숭 떨며 고상한척하지 않잖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니까 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들이 우리를 싫어해서 밀어내지 않는 한 함께 저녁 먹자. 크루즈에서 내릴 때까지만이라도.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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