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언제나 계절 따라서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다. 지난여름 무더위 때문인가? 올해는 추위가 빨리 왔다. 나뭇잎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굳세게 초록색으로 버텼다. 서너 차례 비가 오고 난 후에야 억지로 색이 바랜 듯 힘없이 떨어졌다. 가을이 짧아서 시간을 잃어버린듯 우울하다. 씁쓸한 심정으로 떨어지기 싫어 버티던 낙엽을 밟는다.
오래전, 한 여자가 내 옆에 앉아 노트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흘금 들여다본 그녀의 노트북 첫 문구는, ‘낙엽 따라 떨어져 묻히고 싶다.’였다. 뭔가 뭉클한 안쓰러움으로 알게 된 그녀는 얼핏 보기에는 둥글둥글 사람 좋고 수더분하게 생긴 것이 욕심 없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다.
어느 날 그녀가 내가 주관한 모임에 왔다. 모임이 무르익을 무렵 그녀는 바쁜 나에게 물었다.
“나 갈까요? 말까요?”
“편한 대로 해요.”
가든지 말든지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건지. 나 원 참.
그녀는 가지 않았다. 내 주위를 서성이던 그녀가 한참 후 다시 다가왔다.
“나 가요.”
“와 줘서 고마워요. 잘 가요.”
간 줄 알았던 그녀가 한참 후 또다시 다가왔다.
“나 정말 가요.”
깜짝이야. 아직도 안 갔단 말인가!
“아직 안 갔어요. 간 줄 알았는데. 잘 가요~”
나보고 어쩌란 말인지! 질기기도 하다.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고 나는 그녀에게 질렸다.
그녀는 그렇게 생겼고 그냥 생긴 대로 제자리에서 제 본분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간다고 했으면 갈 것이지 가지 않고 왜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바쁜 나를 신경 쓰게 하는 그녀가 버거웠다. 그 이후 나의 고정관념은 그녀를 무조건 부정했다. 우리의 만남은 결국 나 혼자 기대하다 실망하고 싫어져 끝났다.
굳이 서로가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이해하고 말고 할 일이 있을까? 이해하려다가 더 큰 오해로 이어지기 쉽다.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더 큰 불화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그녀를 밀어냈고 그녀도 눈치챘는지 멀어져 갔다.
내가 그녀를 밀어낸 것이 지금 와 생각해보니 어처구니없는 작은 일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그녀를 완전히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낙엽 따라 묻히고 싶다.’던 그녀를 내가 낙엽 밟듯이 밟아 묻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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