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검은 개가 짖으며 물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개 주인을 찾았다. 개 주인은 떨어진 곳에서 ‘개야 물어라.’ 하는 태도로 놀라는 나를 보며 즐기고 있었다.
“네 개가 나를 물려고 하는데 개를 부르지 않고 뭐하냐?”
“선글라스에 마스크와 모자를 쓴 너의 이상한 모습을 보고 개가 놀라서 짖는 거야.”
오히려 개새끼 걱정을 하는 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특히나 비 오는 날 우비에 장화를 신고 나가면 개들이 쫓아 와서 짖는다. 개들도 주인을 똑 닮아 못된 주인이 키운 개는 사납게 짖으며 달려든다. 개가 가까이 와서 인사하듯 빤히 쳐다보는 착한 개 주인은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우울증 주인 개 또한 우울증인지 다른 개하고는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배회한다.
개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주머니에 먹을 것을 넣고 다니다가 달려들려는 개를 멀리 쫓기 위해 던져줄까 궁리했다. 다 귀찮아서 개 줄을 해야만 하는 오전 9시 이후로 산책 시간을 바꿨다.
산책하며 개에게 시달리던 내가 이제는 인간에게 시달려야 한다니! 동양인 노약자를 겨냥해 발길로 걷어차는 데야 어찌 방어할 수 있단 말인가. 호루라기를 가지고 다녀라. 페퍼 스프레이를 뿌리라고 하지만 갑자기 호루라기 불 틈이, 스프레이를 꺼내 뿌릴 틈이 없을 것 같다. 나이 들어 제 몸 추스르기도 예전 같지 않은데 갑자기 얻어맞아 널브러지면 비상 도구들을 과연 써먹을 수 있을까? 더욱 황당하고 섬뜩한 것은 주위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떨어진 나무토막들을 눈여겨보며 저것이라도 들어 싸워볼까? 생각하다가 길가다 걷어채이는 것이 비바람에 떨어지는 나무토막에 맞을 확률인데 너무 겁먹지 말자. 일단 눈을 마주치지 말고 길을 양보한다. 앞뒤 좌우를 살피며 빨리 걷다가 불길한 느낌이 들면 다른 길로 간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를 향해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면 피한다. 사람들이 걷기 불편해서 잘 다니지 않는 길로 걷는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질러 상대가 주춤할 때 뛰어 도망간다. 별별 살아남을 궁리를 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사색 없는 산책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다. 물론 사람들에게도 쫓기고 싶지 않다. 천천히 움직이며 절대로 서두르지 말자. 건널목에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자. 떠나려는 지하철을 급히 잡아타지 말자. 순간을 아끼려다 영원함을 잃지 않으려고 다짐하며 우아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동양인 인종차별 날벼락을 맞은 건지. 이렇게 눈치 보며 걷다가 습관이 몸에 밸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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