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3, 2021

갈림길에 서 있는 뱃살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 살던 사람이 세속에 나와서 거리에 넘쳐나는 뚱뚱한 사람들을 보고 놀라는 장면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옛날 필름 속의 날씬한 사람들과 요즘 미국 사람들의 몸매를 비교하며 의아해하듯이. 예전 사람들의 몸매는 옷과 몸 사이에 여분이 있고 각진 몸매였다. 몸이 밖으로 부풀지 않고 안으로 여유롭게 패인 듯 매력적이다. 가는 몸으로 행동하며 말하는 모습은 꽤 로맨틱하다. 

 나는 뱃살을 부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팬더믹 동안 일단 살고 보자며 부지런히 먹고 늘어졌더니 두부 한모가 배에 그리고 양쪽 옆구리에 반 모씩 붙었다. 이제 여행 가서 수영복을 입고 몸매를 드러낼 날이 다가온다. 늘어난 살들을 자꾸 거울에 비춰보며 먹자마자 늘어졌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럽다. 

 동양인이 타깃으로 길거리에서 얻어터지는 바람에 뒤에서 발소리만 나도 뒤를 힐끔힐끔 보다가 빙판에 두 번이나 넘어졌다. 창피하다고 급히 일어날 생각도 없이 잠깐 그대로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리도 혐오했던 나의 살찐 엉덩이가 나를 살렸다. 내 몸은 빈약한 상체에서 내려오다 비만인 하체와 만나는 긴 허리 덕분에 나이 들어서도 가느다란 허리선을 유지는 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상체와는 대조적으로 굵다. 게다가 살찐 히프가 쳐졌다. 평생 나는 내 히프를 구박했다. 그런데 두 번 넘어졌는데도 거뜬히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도 혐오했던 살찐 엉덩이가 쿠션 역활을 할 줄이야! 

 내가 또 구박하는 처진 팔뚝과 뱃살을 만지며 이 살들도 앞으로 써먹을 때가 있을까? 써먹을 때가 전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누가 알랴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지. 살다 보면 나빴던 것이 좋아지고 좋았던 것이 나빠짐을 경험한다. 함부로 나쁘다 좋다를 단정하며 복을 걷어찰 일이 아니다. 

 나이 들어 살집이 있는 것이 낫다고들 하지만, 쓸데없는 것이 딱 달라붙어 나를 따라다녀서 몸이 예전처럼 가뿐하지가 않다. 삼십분간 먹고 즐기며 늘어지는 것은 삼분처럼 느껴지고, 뱃살을 빼기 위해 삼십 분 하는 운동은 세시간처럼 길게 느껴져서 점점 지쳐간다. 

 생긴 대로 뱃살을 껴안고 살까? 아니면 운동을 계속해서 빼는 데까지는 빼 볼까?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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