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6, 2021

흩어진 영혼들

 “착한 사람보다 못된 사람이 더 오래 살아요.” 
엄마보다 30년을 더 살다 가신 내 친정아버지를 두고 올케가 한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버지보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더없이 좋은 분이셨다. 엄마는 묵묵히 어려움에 처한 친정 동생들은 물론이요 일가친척과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큰소리 내고 화내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사업 확장할 때마다 알뜰하게 살림하며 모아놓은 쌈짓돈을 내놓아 아버지를 기쁘게 했다. 

 “나 죽어서 네 엄마 만나면 야단맞겠지?”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는 착해서 아버지와 다른 곳에 있을 텐데 만날 일 없어요.” 
“내 묘비에 ‘내가 왜 이렇게 됐니?’라고 써라.” 
“화장해 달라고 했잖아요.”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 나눈 씁쓸한 농담이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4년을 더 사셨다. 나는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 조용하고 점잖고 우리 부부가 뭘 원하는지를 관찰하다가 도와주시곤 했다. 게다가 영화배우보다 더 잘생기셨다. 나는 결혼 전 LA에 있는 시댁에 인사 갔다가 시아버지를 만나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불행하게도 시어머니가 워낙에 우성이라 시아버지 외모와 성품을 닮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어머니는 복도 많으세요. 아버님처럼 멋있고 돈 잘 버는 사람과 사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네 말이 맞다.” 
시어머니는 짜증 내시다가도 인정했다. 그러나 부부 사이는 부부만 안다고 시어머니는 가까이 사는 막내동서가 돌아가신 시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도 싫다며 푸념하셨다. 
“어머니 그럼 제가 아버지 제사 모셔 올게요.” 
“그래 주면 오죽이나 좋겠니.” 
남편은 시아버지의 제사와 차례를 잊지 않는다. 내가 밥과 국에 생선전만 준비해 주면 과일과 커피, 와인 등 평소 즐기시던 것으로 간소하게 지낸다. 절을 하고는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지 한동안 멍하니 상 앞에 앉아있다. 크루즈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도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베란다 옆에서 뷔페에서 가지고 온 과일과 음식을 차려놓고 아버님을 기린다. 

 시어머니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이왕 지내는 김에 수저 한 개만 더 올려 어머니 차례도 함께 지내지.” 
내가 인심쓰듯 말하자 남편이 
“엄마는 LA에 사는 형제들이 알아서 지내고 우리는 아버지 것만 하면 돼.” 
“결국, 우리 친정 부모처럼 시부모님도 만날 수 없게 됐네. 굳이 저세상에서까지 함께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훌훌 원하시는 대로 자유롭게 각자 편한 곳에 계시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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