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신사동 가로수 길에서 샛길로 빠져 조금 걷다 보면 좁은 삼거리가 나온다. 모퉁이에 단아하고 소박한 빵집이 있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젊은 여자가 빵 반죽을 한다. 높다란 요리사 모자 아래 티 하나 없는 흰 얼굴, 쌍꺼풀 없는 눈, 크지 않은 코 그리고 핏기없는 입술을 가진 여자다. 전혀 힘든 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구중궁궐 사극에나 나옴 직한 조용한 분위기의 여자다. 주물럭거리는 반죽 속에 묻힌 손이 어찌나 하얀지 반죽인지 손인지를 분별이 쉽지 않다. 마치 전생부터 해오던 일인 양 명상하듯 반죽에 빠져있다.
반죽 안에 달콤한 내용물을 채우려고 달콤한 새벽잠에서 깨어난 하얀 손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부풀어 노릇노릇 구워진 빵들을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았다. 긴장이 풀린 듯 약간 벌어진 입가에 하얀 이가 고르다. 오븐으로 들어가기 전의 곱게 빚은 반죽 빵 모습 같은 그녀의 순수함에 넋을 잃고 쳐다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시선을 거뒀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녀를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다.
머무는 숙소로 가려면 삼거리 빵집 앞에서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적어도 하루에 서너 번은 빵집 앞을 지나쳤다. 왼쪽 창으로는 가게 안이 훤히 보이고 오른쪽 창으로는 빵 만드는 그녀가 보였다. 숙소를 오갈 때마다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또 쳐다본 또 다른 이유는 반죽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달짝지근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빵집에 들어갔다. 향긋한 당과 밀가루가 어우러져 아득히 빠져드는 폭신한 식감이 진동한다.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 흐른다. 가슴을 조였다 풀고 조이며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음률이 작은 빵집을 휘감았다. 여자가 흘깃 눈길을 줬다. ‘그러면 그렇지 안 들어오고는 못 배길걸.’ 하는 미소가 그녀 입가에 번진다고 느낀 것은 착각일까? 삼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나는 삼거리 코너 가게들을 좋아한다. 단면이 아니라 양면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다. 창가에 앉으면 삼거리를 통째로 안은 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 할 수 있다.
빵집은 천정이 낮아선지 아늑했다. 빵을 늘어놓은 진열장이 꽤 자리를 차지했다. 손님이라곤 구석에 앉은 젊은 두 여자뿐이다. 진열장 오른쪽 뒤에서 그녀는 빵 반죽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녀가 손수 꾸려나가는 빵 가게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할 때 친구가 들어왔다.
큰소리로 요란 떠는 평상시와는 달리 분위기에 젖어 나도 모르게 소곤거리며 빵의 속살을 조심스럽게 조금씩 뜯어 오물오물 삼켰다. 천천히 커피잔을 들어 소리 내지 않고 마셨다. 친구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교양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 왜 그래. 왜 이리 조용해. 어디 아파? 남편하고 무슨 일 있어서 서울에 온 거야?”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주위를 휘둘러보며
“야~ 나 교양 좀 떨면 안 되냐~”
라고 본성이 소리 지르려는 찰나 여자가 반죽하던 손을 털고 나왔다. 우리 식탁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아닌가? 헷갈렸다. 입에서 방금 떨어지려는 악다구니를 꿀꺽 삼키고 우아하게 커피잔을 들면서 대웅전 부처님의 염화시중과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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