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2, 2020

폭우, 바람 그리고 무더위

차 경적에 잠을 깼다. 여느 때 같으면 짜증이 날 텐데 왜 이리 친근감이 드는 것일까. 내가 다시 내 발로 활기차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의 한복판에 돌아와 있다는 자유로움에 느긋하다.

코스타리카 Arenal Volcano National Park 가는 길 언덕 위에서 눈 아래 펼쳐진 들판을 바라봤다. 바람이 너무 좋다. 살면서 이렇게 좋은 바람을 몇 번이나 만났던가. 보이는 것이 모두 초록이다. 초록 속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의 진한 원색이 눈부시다. 짙은 검은색 틈 사이로 선 분홍 꼬리를 흔드는 새들의 모습도 황홀하다.

화산 온천 리조트에 도착했다. 밤새 비가  정신없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잠을 설쳤다. 다음날도 비는 그치지 않고 퍼부었다. 비를 맞으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다 보니 온천물인지 빗물인지 의심이 들며 슬슬 기분이 언짢아졌다.

Monteverde Cloud Forest로 이동했다. 바람이 몹시 분다. 내 작은 몸집은 흔들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바람이 분다. 다음 날 바람이 그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분다. 원래 그렇단다. 그래서인지 길거리는 말끔하다. 예전에 길 가다 눈에 굵은 먼지가 들어가 이멀전시에 간 적이 있다. 빨리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눈알을 껌벅이지도 못하고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 말로는 콧등이 낮아서라니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Guanacaste Beach로 이동했다. 바닷가 앞에 있는 리조트 호텔이다. 습도는 없지만, 햇빛이 작열해 몸에 열꽃이 올라와 가려웠다. 모래가 거뭇거뭇 퉤퉤 하다. 화산 모래라서 그렇단다. 골프나 물속에 머리 처박고 노는 것을 즐기지 않고 오로지 수영과 선탠만 하는 나에게는 리조트가 맞지 않았다. 차가 없으면 리조트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동네 구경도 본토 음식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매일 보는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한마디로 호화로운 감옥과 다름없다.

미국 사람들이 은퇴하고 바닷가에 많이들 산다고 해서 리뷰 좋은 여행사에 예약했다. 그러나 물가가 뉴욕과 비슷하고 기후가 널 뛰듯 해서 정신살 가누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사는 나 같은 손님을 받아 호텔은 익스피디아에 넘기고 이동은 현지 여행사에 넘겼다. 관광산업이 그런 되로 잘 돼 있다. 어김없이 시간 맞추어 나타나는 픽업 벤 모습엔 손뼉을 칠만했다. 그러나 업그레이드한 호텔이 현지 주민들과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에 있었다. 작은 녀석 말이 엄마 아빠가 안전한 곳에 있어야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곳으로 예약했다니 할 말이 없었다.

리조트에 갇혀 있다가 집에 오니 새장을 벗어난 듯 기쁠 수밖에. 길거리 소음도 너저분한 것도 모두가 반가웠다. 나는 리조트 체질은 절대 아니다. 북적거리는 도시를 내 발로 돌아다녀야 하는 체질이다. 아파트 문을 닫으면 조용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 대도시 속의 리조트가 아닌가. 문을 열고 나가면 두발로 활기차게 걸을 수 있는 도시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여행하면 할수록 뉴욕시티를 더욱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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