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3, 2018

울 코트

갑자기 불어닥친 추위에 입고 갈만한 두텁고 따뜻한 코트가 없는 남편은 그래도 가야지.’하며 친정아버지가 입다 준 검정 코트를 걸쳤다.

부고장을 받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좋아하는 선배님 부인의 장례식을 장지에 모여 간소하게 치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매서운 날씨에 차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웅크리고 앉아 백미러를 들여다보며 두리번거렸다. 영구차 손님 석에 훤칠하고 잘 생긴 선배님이 회색 울 코트를 입고 앉아 엷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주변에 모인 조객들도 야릇한 미소로 답례했다. 누군가는 어 웃어!’ 하는 분도 있었다. 남자들은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고 했던가!

주변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깔끔하게 구성된 언덕 위 장지를 향해 거센 바람이 불었다. 모두가 웅크리고 관 주위에 둘러섰다. 고인이 원했다는 자연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관 위에 하얀 백합 한 송이씩을 얹으며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는 애도의 시를 낭송하는 간략하나 품위 있는 장례식이었다.

여느 이민사회의 장례식과는 달리 흰 봉투도 없었다. 게다가 장지에 온 모든 분에게 점심을 대접하기 위해 가까운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강추위에 떨다 갑자기 따뜻한 벽난로 가에 옹기종기 모여 와인을 들이키자 얼어붙었던 얼굴이 벌게졌다. 특히나 얇은 코트를 입고 떨던 남편은 이렇게 따듯하고 포근할 수가!’ 하는 조객들에게 베푼 감사의 표정이 역력했다.

장지에서 추위에 떨던 남편 모습이 되살아나 그럴싸한 울 코트 하나 사 주려고 남자 매장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좀처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포근하면서도 오래 입은 옷처럼 작은 키에 어울리는, 까다롭기까지 한 남편 마음에 드는 울 코트가 과연 세상에 존재하기라도 할는지? 포기하기를 여러 번.

가난한 어린 시절 명절에 엄마가 오랫동안 입으라고 사준 커다란 옷과 신발에 대한 침울한 기억 탓인지 남편의 패션은 엄청 까다롭다. 그냥 이것저것 입다 보면 맞는 스타일을 찾게 되어 자연스럽게 멋을 낼 수 있을 텐데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되고. 발품 팔아 사다 주면 입지 않고 처박아 두니 아예 울 코트는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코트 어때? 입어 봐. 싫으면 당장 리턴하게.” 
쇼핑도 싫어하고 내가 사 온 옷도 입어보라면 나중에하던 평소와는 달리 눈이 번득이더니 벌떡 일어나 옷을 걸친다
맘에 들어. 좋아.” 
정말? 한 번 더 입어봐.”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입어보는 울 코트야.”
라는 게 아닌가! 측은지심에 눈물이 고인다.

모양은 둘째치고 따듯한 옷을 입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김장 끝내고 월동 준비하고 난 듯 마음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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