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4, 2017

나의 신경치료제

! 좋다. 좋아. 화장실 봤어? 우리 집 큰방보다 더 넓은 것 아냐? 시트 좀 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꿔 준다는 카드도 있어요. 아니 이렇게 좋은 것을 바꿔 달라는 사람들도 있나?” 
도대체 이거 얼마짜리 호텔이야?” 
아이가 예약했는데이 녀석이 너무 오바한 것 아니야?” 
독일 함부르크에서다.

뉴멕시코주 산타페이로 전시회 하러 갔을 때 묵었던 호텔 다음으로 이렇게 좋은 호텔에 머물기는 세 번째다.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비싼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구혼 여행이라.’ 며 아깝다는 미련을 버리지만 비싼 곳 그리고 값나가는 물건에 둘러싸여 느끼는 불편한 기억들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LA에 간다는 소식을 전하면 시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가자미 삭히시고 무채 썰어 함경도식 가자미식해를 뉴욕에도 가져가라고 여러 병 준비하신다. 어머니 말만 믿고 따라 하다 가자미 곰 삭히는 시간을 조절 못 해 아까운 재료를 버린 자식들은 누구는 더 줬네. 조금 주네. 투덜대다가 앉은 자리에서 거덜 낼 정도로 가자미식해를 좋아한다.

이런 별미의 식해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어머니가 LA에서 산타페로 향하는 렌터카에 실었다. 가다가 아무도 없는 데스밸리 (Death valley) 인근 사막 야자수 아래에서 먹으면 냄새가 안 난다며. 식해를 곁들인 하얀 쌀밥을 먹고 포만감에 사막 모래밭에 누워 찜질했다. 차내에서 가리키는 밖 온도가 거의 120도에 육박했으니 천연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전시회를 위해 화랑에서 잡아 준 산타페 근사한 호텔에 도착해서부터가 문제였다. 나가고 들어 올 때마다 발렛파킹만 해야 한단다. “식해 냄새~” 화들짝 놀라며 남편과 얼굴을 마주 보다 후다닥 창문을 열고 부채질했지만, 사막을 지나며 더욱 삭혀진 냄새가 터질 듯했다. 결국엔 산타페를 떠날 때까지 차를 쓰지 못했던 불편한 기억이 있다.

엄마, 아빠도 인제는 안전하고 근사한 호텔에서 머물러야 한다.’며 아이가 예약한 함부르크 비싼 호텔은 너무 좋아 밖에 나가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관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고. 그 넓은 화장실 안에는 생전 써 보지 못한 값나갈 것 같은 것들로, 써도 되는지? 아닌지? 수도꼭지는 뭐가 그리 많고 복잡한지 이걸 틀었다가 저걸 잠갔다가.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냉장고 안의 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더는 지불할 것이 없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디파짓한 100유로에서 빼 나갈까 봐 고민했다.

그래서 예전에 친정엄마가 끄덕하면 난리 쳐대는 나에게 성질 죽이는 한약을 먹여야 한다.’고 했나보다. 그 성질 죽이는 약이라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술. 한 잔의 술이 들어가면 너무 생생히 살아서 번득이며 부딪치던 신경이 축 늘어지며 세상 모든 것을 용서하니 한두 잔의 레드와인은 나의 신경치료제로 항상 끼고 살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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