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분위기가 술렁거리며 어수선하더니 하나둘 떠났다. 학교는 텅 비었다. 닫힌 카페테리아 안을 기웃거렸다. 아쉬운 듯 뒤 돌아 나와 방에 굴러다니던 초콜릿으로 요기했다. 카페테리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미국에서
처음 맞은 롱아일랜드 가든시티에서의 땡스기빙은 배고픔으로 기억된다.
혼자 텅 빈 방에 있는 것이 석관 속 어둠으로 들어가
눕는 듯했다. 늦가을 추적추적 내린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학교 주위를 맴돌았다. 훤히 불 켜진 창안을 통해 벽난로 가에 모인 화기애애한 이웃들을 흘긋 들여다봤다. 진한 외로움에 가슴이 시려 왔다.
누군가가 불러준다면 서슴지 않고 달려가고 싶은 날이다. 초대받은 집 거실에서 담소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물에 손 담그고
설거지 거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련만…. 갈 곳도 부르는 사람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행사 많은 시집이 지겨워 연말이
오는 게 싫다. 시집 식구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한 연휴였다. 영어를 할 줄 몰라 말이 통하지 않는 시집 식구들과 만나기 싫다. 땡스기빙엔 친정에 가기로
했는데 화난 시어머니 때문에 가시방석이었다.’ 연휴 때마다 며느리들의 입에서 쉬지 않고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아들만 둘인 내가 며느리를 본다면 들어야 할 불평들이겠지? 한 해에 한두 번 만 그것도 며느리가 원할 때만 만난다면 불평을 듣지
않을 수도 있을까? 비용을 내가 부담하고 명절엔 온 가족이 크루즈 식당에 둘러앉아 식사한다면 그것도 며느리가
가겠다는 전제하에, 그래도 아닌가? 며느리는 시부모와 크루즈 타는 것도
싫고 친정에 가서 연휴를 보내고 싶겠지? 그런데 노부부가 집에 우두커니 있으면 가시방석일 테니 사라져 줘야겠지? 그
옛날 명절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던 방문객이 마뜩잖아서 엄마와 함께 훌쩍 온천으로 떠나시던 친정아버지처럼.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아이들은 결혼할
생각이 없는듯하다. 나 또한 아이들이 결혼해도,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나는 유학 생활이 너무 외로워서 했다지만, ‘오라는 데도, 해야 할 일도 많아 바쁘고 삶이 즐거운 아이들이 굳이 결혼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아들들 나이가 꽤 됐을 텐데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느냐?”
며 지난번 독자분을 만났더니 의아해하셨다.
“제가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들도 한참 후에 낳아서 아직 서두를 나이가 아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독자의 궁금증에 내가 더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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