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가로등이 켜졌다. ‘아니 벌써 등이 켜지다니! 하지
지난 지가 언제더라? 등이 고장 났나?’ 낮이 점점 짧아지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겠지. 그러나저러나 그녀를 언제나 다시 만나려는지?
항상 그렇듯 맨해튼 리버사이드 공원을 콜롬비아 대학
쪽으로 걷고 있었다. 호리호리한 동양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온다. 멀리서 봐도 지적이고 남다른 분위기다. 인사 할까 말까 망설이다 겸연쩍어 살짝 웃으며 지나쳤다.
다시 다운타운 쪽으로 내려오는데 좀 전에 마주친 그 여자가 또 다시 반대 방향애서 왔다.
"혹시 이 선생님 아니세요?"
그녀가 내 옆을 스치는 순간 한 톤 높은 상냥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어떡해?"
나는 물었다.
"리버사이드 공원을 산책한다는 신문에 나간 선생님 글을 읽고 언젠가는 산책길에서
마주칠 것 같아 주의 깊게 그동안 살폈어요. 오늘은 이상하게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틀림없을 것 같다는 직감으로 용기 냈어요."
내가 웨스트 96가 조계사 근처에 사는 것 같아 법당 가는 길에 연락 온 독자를 만나
차를 마신 적은 있다. 그리고 퀸스 어느 성당에서 내가 라인댄스를 춘다는 신문에 난 글을 읽고 독자가
찾아와 함께 춤을 추다 친구가 된 경우는 있지만, 산책하다가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매일 같은 길을 쉬지 않고 반복해 걷는 나에게
"존비 같에. 지루하지 않아?"
라던 지인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어쩌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즐기는지도 모른다.’는 체념으로 걷고 걷던 산책길이 그녀와 마주친 후로는 예전 같지 않다.
날씬한 여자가 보이면 그녀가 아닐까? 그녀와 마주치기를 기대하며 걷는다. 그녀가 즐겨 앉아 쉰다는 산책길 삼거리 ‘메기 스미스’라는 사람이 기부한 의자에 앉아 산책 시간을 연장하고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기다린다.
지금은 뉴욕으로 돌아와 일만 하는 작은 아이는 열네
살 때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틈만 나면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다.
“엄마 혼자 여행하는
거 너무 외로워요. 목적지에서 누군가를 만날 계획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정처 없이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것에
이제는 지쳤어요. 남미에서는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17시간을
혼자 걸은 적도 있어요.
여행은 고행이라 당분간은 한 곳에 머물며 돈 벌어야겠어요."
했던 아이의 말에 수긍이 간다.
‘오늘도 만나려나.
기다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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