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길고 추운 겨울나기가 힘들어 코피를 쏟는다는
나이 든 이웃이 있었다. 결국, 캘리포니아의 실버타운으로 옮겨가서 건강을 회복했다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보낸 지난 긴 겨울, 정말 지긋지긋한 반년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이 봄을 건너뛰고 왔다. 80도를 웃도는 주말, 일찌감치
깔개를 들고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솔직히 뒷이야기 하기 싫어 차일피일 미뤘던 친구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연극을 보기 위해서다.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가 시작되자 전혀 옷을 걸치지
않은 몸에 검은 물감을 희끗희끗 바른 애 띈 여자가 나무토막을 들고 잔디밭 위를 서성인다. 인터넷을 통해 등장인물이 여자만 11명, 그것도 누드라는
것을 알았지만, 젖가슴을 내놓은 서너 명의 관객들도 눈에 뜨였다. 따사로운
풀밭 위의 벗은 등장인물들이 한 그루 나무처럼 자연스러워 오히려 옷을 걸친 내 모습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연극이 끝나고 언덕진 풀밭에 친구와 누웠다. 우리가 만나지 못한 지난 8개월
동안 이 친구와 연관된 굳이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과연 오늘 내가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혀에서 곧 떨어지려는 말을 참을 수 있을까? 친구가
물어보면 어쩌지?’를 생각하다가 서울서 요즈음 한창 구설에 오른 ‘조
씨의 대작’(유명한 조 씨의 그림을 송 씨가 대신 그렸다.)에 대한
유명인 뒷담화를 했다.
‘뒷담화 하는 사람이 가장 싫다.
그런 사람 ‘누구’는 피해야 한다.’
며 또 다른 뒷말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뒷담화가 재미있지 않은가! 물론 하고 나면
골이 땅기고 씁쓸하긴 하다.
인간 사는 세상에서 인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무튼, 오늘 나는 ‘그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뒷담화를 피하려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마치 구중궁궐에 갇힌 외로운 궁녀처럼 처량하게 늙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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