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7, 2016

염소탕과 보신탕

터키 이스탄불의 골목마다 정월 축제로 양고기를 준비하느라 길바닥에 핏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흑해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몸을 꽁꽁 여미고 곳곳에 흐르는 핏물이 신발에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건너뛰며 걸었다. 허구한 날 염소를 잡던 어린 시절 친정 집안 풍경과 흡사했다.

염소 달이는 누린내가 어릴 적 기억 속 냄새 중의 하나다. 막냇동생을 낳다 지병을 얻은 엄마에게 영양공급을 위해 이모들이 모여 염소를 달였다. 그들도 물론 눈치 보면서 한 냄비 가득 챙겨갔다

흑염소가 비싸서 흰 염소에 구두약을 칠해서 판다.’는 어른들의 어이없는 신문기사 이야기를 엿들었다. 혹시 구두약 바른 흰 염소를 달이느라 냄새가 저리도 고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만 잡생각을 하곤 했다.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약한 나를 보신하려고도 했다. 눈치 빠른 나는 염소 곤 국물을 곰국이라며 먹이려면 수저가 입 가까이 오기도 전에 입을 꽉 다물고 도리질을 해댔다. 어쩌다 입에 들어간 국물을 토해내느라 난리를 쳤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나에게 개고기를 먹이려고 엄마처럼 무던히도 애썼다. 개고기는 더욱더 아니다. 한 수저만 먹으면 다시 먹고 싶은 것이 개고기라며 어르고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아버지는 개고기를 육개장인 양 집으로 가져와서 먹여보려고도 했지만, 보기만 해도 창자가 뒤틀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나를 보고 혀를 차셨다.

염소탕과 개고기만 먹이면 비실비실한 내가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안타까움에 엄마와 아버지는 무던히도 애썼는데부모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도 부모를 사랑하는 것 못지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먼 옛날이야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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