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서울 변두리 초등학교
다닐 때 제대로 점심을 먹지 못해 키가 크지 않았다고 남편은 투덜거린다. 어려운 동네 초등학교,
반에서 20% 정도만 도시락을 싸 오고 나머지는 운동장에 나가 수돗물을 마시며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니! 아카시아 꽃을 한 움큼 씹기도 하고 누런 벼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고 밭 주인 몰래 무를 캐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쓰리다. 아마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나 싸 주니 까다로운 남편이 아예 들고 다니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동네시장에서 참기름 장사하는 한 반 아이의 엄마가
따끈한 냄비국수를 가져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모두가 부러운 곁눈질로 쳐다보고 입맛을 다시며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가곤 했단다. 엄마의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한 그 친구는 전교 우등생으로 훗날 내과 의사가
됐단다.
참기름 장사 친구 엄마처럼 지극정성으로 도시락을 싸주면
화가인 우리 남편도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싸다가도
"아이고 이 나이에 도시락 싸는 내 신세야!"
질리지 않고 항상 좋아하는 케일 된장국이나
싸준다.
"뜨끈한 케일 된장국이 든 도시락
가방을 둘러메고 걸으면 옆구리가 뜨근뜨근해서 겨울에는 좋지만, 한여름에는 어쩌지? 그땐 얼음 띄운 시원한 냉국으로 싸줘. 히히히."
나를 쳐다보며 웃는 남편에게
"아니 평생 먹은 된장국이 질리지도 않아."
‘도시락 반찬을 뭐로 싸지?’ 하며
밤새 고민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간신히 들고 빈손으로 남편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오늘은 쉬어,
샌드위치 사 먹을게."
아쉬운 듯 힘없이 나가는 남편 등에 대고
“미안해요. 내일은 꼭 싸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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