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밖이 어둡다. 남편이 ‘일 년 중 가장 낮이 짧은
동지엔 할머니가 찹쌀 고명을 넣은 팥죽을 쒀주곤 했다.’며 ‘어찌 된
것이 마누라는 단 한 번도 팥죽을 쑤지 않는지!’ 하는 삐딱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팥죽을 쓸 줄 알면 동지도 알았게.
죽 쑤는 소리 하고 앉았네!’
밝은 대낮엔 저만치 떨어져 걷더니만 어두우니 옆에
붙어 걷는다. 대학 다닐 때는 같은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도 서로 엮일까
봐 눈도 마주치지 않았었다. 한인 배필을 찾기 어렵던 시절, 뉴욕에서
마치 적십자 구제용으로 나이 30줄에 서로 구제해주다 엮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변함없이 함께
걸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팥죽 쑤는 것을 배워 쒀 줄걸.
그랬나? 귀찮다. 귀찮아. 말도 꺼내지 말아야지.’
옆에서 걷는 남편이 더욱 작아진 듯하다. 예전엔 올려다봤던 것 같은데 눈높이로 보인다. 구부정한 것이 많이 늙었다. 그림 그리랴 가족 부양하랴 무척 힘들었겠지!
‘다음 동지엔 팥죽을 쒀 줄까
보다.’
경쟁이 치열한 뉴욕에 길바닥 홈레스 만큼이나 지천으로
깔린 화가들 속에서 정말 화가답게 살아남기 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동반자라기보다는 동업자로 함께 하지 않았을까?
‘한 해에 한 번뿐인 동지에 집안의 악귀도 쓸어낼 겸 동업자에게 팥죽을 쑤어주며
힘을 북돋우면 사업이 번창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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