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30, 2016

조용한 혼돈

로이스 로리(Lois Lowry)의 더 기버(The giver), 한국에서는 기억 전달자로 번역된 책에서 보여주는 공동체가 자꾸 생각나는 까닭은? 지금까지 다녔던 여행지와는 전혀 다른 일본의 여러 도시와 시골을 둘러보면서 드는 느낌이다. 

까마귀들이 까욱 까욱 우는 호젓한 길에서는 신발을 벗고 피곤한 맨발로 걸었다. 작은 휴짓조각조차도 볼 수 없는 깨끗한 길가 맑은 개천에서는 오리가 졸졸 흐르는 물살을 탄다. 버스와 택시 자가용 등이 세차하고 방금 나온 것처럼 반지르르 윤이 났다. 이층집마다 비를 맞고 먼지가 쓸려나간 듯 정갈하다.

빈 병들은 깨끗이 씻어 색깔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해서 버린다. 쓰레기 차가 지나가고 나면 동네 나이 많은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종종걸음 (기모노를 입고 걸었던 습관)으로 나와 뒷정리를 한다. 연못엔 기모노의 화려한 색채를 연상시키는 비단잉어가, 길거리엔 그들 전통복장에 종종걸음이지만 비단잉어처럼 여유작작이다. 뉴욕의 흔한 범죄 하고는 상관없는 나라다. 길거리에 떨어진 타인의 물건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는 아들 녀석의 감탄 아닌 감탄.

나처럼 눈과 몸집이 작은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것은 착각이었다. 산에 나무 덤불이 울창하듯 머리숱이 많고 타 인종과 섞인 듯한 빼어난 인물에 건강한 모습들이다. 부인들은 조곤조곤 말을 하고 무색의 단정한 옷을 입고 자전거로 장을 보러 가거나 방과 후 자전거 앞뒤로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한다. 자동차 경적과 엠블란스 소리는 듣지 못했다.

슈퍼마켓의 물건들은 윤이나게 청결하다. 아이스크림을 샀더니 드라이아이스에 넣어줄까? 물었다. 그들의 친절함에 고개 숙이며 내 입에서도 쉴 새 없이 스미마셍 (실례합니다) 과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가 흘러나왔다.

절제된 삶 속에 조용하고 깨끗한, 빈틈없는 질서와 메너로 길든 일본인들의 삶을 보면서 예전에 읽은 책 기억 전달자책 속의 커뮤니티가 자꾸 생각난다. 책 속의 주인공 조나스는 통제를 받고 있다고 전혀 느끼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이 없는 완벽한 공동체에 산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외롭고 험한 세상으로 탈출한다는 내용의 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에 쥐가 나는 듯 그 어떤 갑갑함에 조나스가 완벽한 공동체를 탈출하듯 거칠고 험한 뉴욕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왁자지껄하고 요란한 도시에 길든 탓일까?

Friday, January 29, 2016

Quiet chaos

Why does the community in ‘The giver’ by Lois Lowry's book keep reminding me? It feels like visiting Japan, which is quite different from the place where I have traveled so far.

I took off my shoes and walked tired and barefoot on secluded roads with crows cawing. In a clear stream, ducks ride the rippling current roadsides where I can't see even a tiny piece of garbage. Buses, taxis, and private cars gleamed as if they had just been washed and shined. The houses are neat and tidy, as if the rain has swept away the dust.

Empty bottles are cleaned and sorted by color and non-color. After the garbage truck passes, an elderly neighborhood cleans up after. The pond is filled with silk carps, reminiscent of the brilliant colors of kimono. In the street, people dressed traditional costumes are as beautiful as silk carps. This is a country that has nothing to do with the common crimes of New York. My son's admiration for the fact that no one touches other people's things on the street.

It was a mistake that a small person like me was Japanese. They have hick hair like thick wooden bushes in the mountains. They look healthy and handsome figures that appear to be mixed with other races. Wives talk to each other in quiet way and wear colorless neat clothes or take their kids home on bicycles after school. I did not hear the car horn or the ambulance sirens.
Everything in the supermarket is shiny and clean. When I bought ice cream, 

The clerk asked me, “Do you want me to put it in dry ice?” My heart sinks at their kindness. I kept saying full of sumaseng (excuse me) and arigato gozaimas (thank you) as I bowed my head to their kindness.

The community in the book "The giver", which I have read before, is constantly reminiscent of the life of the Japanese, who are tranquil and clean in a restrained life. Jonas, the protagonist of the book, lives in a perfect community free of pain and sorrow, but eventually he escapes into a lonely and harsh world where pain and joy coexist.

As time went on, I felt like a rat in my head and wanted to return to the rough and tumble of New York City, just as Jonas escaped from the perfect community. Was it because I had become accustomed to the hustle and bustle of the city?

Saturday, January 16, 2016

아닌 것은 아니다

자그마한 정자를 지나 시냇물을 건너 이어지던 숲길은 끝났다. 저 멀리 숲 속엔 더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인이 붙어있다. 끊긴 오솔길로 들어가면 옛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은 아쉬움으로 숲 속을 들여다보며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 전 파티에서의 우리들의 만남도 언젠가는 사진이 바래듯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옛 시절이 되겠지?

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푸른 숲 속에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친구가 파티를 열어 초대했다. 남편은 다른 모임에 갈 일이 있어 누군가의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남의 차 얻어 타기를 무척 꺼리며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한 친구가 남편과 오는 친구의 차를 함께 타고 갈 수 있게 주선해줬다. 난 그냥 슬쩍 묻어가는 신세다. 

어제 드라이브해 줘서 고마워.’ 라는 이메일을 보냈더니 와인 고마웠어.’ 라는 답장이 왔다. ‘내가 준 것이 아니야 함께 타고 간 친구가 두고 내린거야.' 라고 답장을 보냈다. 손도 대지 않고 코 푼 나에게 고맙다니! 순간, 어제 파티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는  커다란 꽃 화병들고 뒤늦게 오길레 무거운 들어다 다며 받아 부엌아무 말도 않고 놔두는데, 들어줄 따로 있지 내가 가지고 처럼 그분이 애써 가져온 것을, '아무튼 나의 이 여러 사람 들게 때가 주는 아니고 가끔 있으니 줘요. 라는 이메일을 부리나케 파티를 연 친구에게 보냈다.

그 꽃은 누가 주셨는지 수임씨가 염려 안 해도 이미 남편을 통해 알고 있었어요.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여러 사람이 보기 때문에 사실이 그리 왜곡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면 쓸데없걱정이었음을 알게 되요. 라는 답장이 왔다천만다행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여러 사람이 보기 때문에 사실이 그리 왜곡되지 않는다.니 그런 세상이라면 살만한 세상 아닌가!

Friday, January 15, 2016

The fact is not distorted.

The forest path that passed through a small pavilion and crossed the stream was over. There is a sign in the wood far away that I can no longer enter. If I entered the path, I seem to be going back to old times. I stood still for a while, looking into the forest.

Will our meeting at the party not long ago will be the old days with faint memories as if photos fading away?

A friend who lives in a picturesque house invited me to a party in a green forest where I had to drive. My husband had to go to another meeting and had to go in someone 's car. I was very unwilling to ride the other person’s car.

A friend arranged for another friend's car to ride together. She also prepared a bottle of wine for each of the invited house and friends who drove us, leaving a bottle in the car without saying. I'm just a freeloader.

I sent an email saying 'Thank you for driving yesterday' and I received a reply saying 'Thank you for the wine.' 'I did not give it to you.' I replied. At the moment, a scene came up at the party yesterday.

'The one who knew came with a large flower vase. I took it to help and left it in the kitchen without telling the owner. When I thought about it, it was as if I had brought it.

I sent an email saying ‘I did not bring the vase.’ to a friend who had a party. And I received a reply saying 'I already knew who gave me the flower through my husband. What’s happening in the world is not distorted by the fact because many people see it. So I realize that it was often a useless worry after a while.’

Thank God! The truth is not so distorted because many people see what’s going on in the world. If it is such a world that’s worth living in!

Saturday, January 9, 2016

손을 잡고서

내 손은 언제나 부드럽고 푹신한 친정아버지 손안에 있었다. 아버지가 건강히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엄마 손은 어떻게 생겼었지?’ 생각해보지만, 손의 모습과 촉감이 기억나지 않는다. 손아래 동생을 낳은 후 평생을 아파 누워 있었던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갔다 오면 으레 엄마 옆에 누워있다 잠들었다. 엄마는 저녁 먹을 때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 내 종아리를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꼬집다가 학교 가야지.’ 하곤 했다. 벌떡 일어나 가방을 찾으며 깨우지 않았다고 신경질을 내는 나에게 차가운 작은 콜라병을 쥐여주며 깔깔 웃곤 하던 엄마. 저녁노을로 붉어진 창밖을 내다보며 단숨에 들이키는 톡 쏘는 달콤한 콜라 맛 같은 우리 엄마는 아파 누워서도 어찌 그리도 내가 뭘 원하는지를 다 알고 있었는지! 

결혼 후 처음 시어머니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무의식중에 시어머니 손을 잡았다. 누구도 잡아 준 적이 없는 거북이 등처럼 단단하고 거칠며 딱딱한 안쓰러운 손은 내 손을 내치지 않았다. 우리는 만나면 항상 손을 잡고 걷는다.

어릴 적부터 잡고 걷던 손을 놓지 않고 성인이 된 아들 둘은 지금도 내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야말로 섬섬옥수다. 친정아버지 손의 두툼하고 부드러운 촉감과는 달리 가늘고 긴 여린 촉감이다. 아버지 손만큼은 편하지 않아 뺄라치면 엄마 차 조심해.’ 하며 더욱 꽉 잡는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걷지 않았다. 아버지 손을 잡고 걷던 내 손은 습관적으로 남편 손에 매달렸지만 내팽개치듯 밀어냈다. 민망스런 내 손은 주머니를 들락거리다 포기하고 주머니 밑바닥만 만지작거렸다.

요즈음 남편은 내 손을 가끔 잡아준다. 단단하고 딱딱하다. 30년 이상 볼펜을 휘두른 손힘이 센 화가인 남편 손에 잡히면 좋기는커녕 얼얼해서 빼고 싶지만, 싫다는 소리도 못하고 꾹 참다가 아이고 손이야!’ 하며 소리 지른다. 눈치 없는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더욱 힘을 준다.

아파도 참고 남편 손을 놓지 않고 가야겠지!

Friday, January 8, 2016

Hand in hand

My hands were always soft and fluffy in my father 's hand, until my father can walk healthy.

I think, 'What did my mother's hands look like?' I cannot remember the shape and feel of her hands. It is because I do not remember holding my mother's hand. She was sick all her life after giving birth to my younger sister.

After school, I fell asleep lying beside my mother. she used to pinch my calf with her thumb and index toes, which I didn’t get up until dinner. And she used to say ‘you have to go to school.’ I woke up frantically. I was angry with her for not having woken up looking for a bag pack. My mom gave me a cold cola bottle and she used to laugh. I look out of the reddened window in the evening glow, and the sweet coke flavor made me lose my temper. How could she lay sick and know what I wanted.

When my mother-in-law first came to New York after marriage, I unconsciously grabbed her hand. Her tough, rough and hard hand like a turtle that had never been held by anyone else, did not throw away my hand. We always walk hand in hand when we meet.

Both of my sons, who have been adults since they were children, did not let go of my hands. Unlike the thick, soft touch of my father's hands, it is a thin and long soft feel.

My husband does not hold my hand when we walk. My hands, clutching my father 's hand, habitually hung in my husband' s hand, but he thrust it out. My embarrassed hands gave up and touched the bottom of my pocket.

These days my husband holds my hand occasionally. His hands are hard and rough. My husband, who is a ballpoint pen artist, has a strong hand because he has swung a ballpoint pen for more than 30 years. I would rather get rid of his hand, but I cannot even say that I do not like it. Untactful husband thinks that I like to hold his hands and gives me more strength.

Even if it hurts, I’ll have to keep holding my husband's hand!

Saturday, January 2, 2016

동지라 설까?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밖이 어둡다. 남편이 일 년 중 가장 낮이 짧은 동지엔 할머니가 찹쌀 고명을 넣은 팥죽을 쒀주곤 했다.’어찌 된 것이 마누라는 단 한 번도 팥죽을 쑤지 않는지!’ 하는 삐딱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팥죽을 쓸 줄 알면 동지도 알았게. 죽 쑤는 소리 하고 앉았네!’

밝은 대낮엔 저만치 떨어져 걷더니만 어두우니 옆에 붙어 걷는다. 대학 다닐 때는 같은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도 서로 엮일까 봐 눈도 마주치지 않았었다. 한인 배필을 찾기 어렵던 시절, 뉴욕에서 마치 적십자 구제용으로 나이 30줄에 서로 구제해주다 엮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변함없이 함께 걸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팥죽 쑤는 것을 배워 쒀 줄걸. 그랬나? 귀찮다. 귀찮아. 말도 꺼내지 말아야지.’

옆에서 걷는 남편이 더욱 작아진 듯하다. 예전엔 올려다봤던 것 같은데 눈높이로 보인다. 구부정한 것이 많이 늙었다. 그림 그리랴 가족 부양하랴 무척 힘들었겠지!

다음 동지엔 팥죽을 쒀 줄까 보다.’

경쟁이 치열한 뉴욕에 길바닥 홈레스 만큼이나 지천으로 깔린 화가들 속에서 정말 화가답게 살아남기 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동반자라기보다는 동업자로 함께 하지 않았을까?

한 해에 한 번뿐인 동지에 집안의 악귀도 쓸어낼 겸 동업자에게 팥죽을 쑤어주며 힘을 북돋우면 사업이 번창하겠지?’

Friday, January 1, 2016

Because of the winter solstice

It’s dark outside even though I got back from the morning walk. The husband said "winter solstice, that the shortest day of the year, my grandmother used to cook a red bean porridge. I wonder why my wife does not.” He looks at me with jaundiced look.

'If I know how to cook the red bean porridge, I would know the winter solstice.  

He walked away from me in the bright sun, and he walked beside me in the dark. When we wear in college in Seoul, we attended together the same classroom, but we didn’t even make eye contact for fear of getting involved in each other. When I came to New York it was not able to find single Korean person. I met him who was in New York through my acquaintance. We married like a Red Cross relief.

Now it is raining and snowing, but even if the wind blows, it has become a fate to walk together.

I’d say, I'll learn to cook the red beans porridge. Did I? It’s bothering me. I’ll keep my mouth shut.

My husband walking next to me seems to be getting smaller. I think I used to look up but I can see him at my eye level. He bent a lot and got old. It would have been very difficult to support the family.

Maybe I should cook the red bean porridge next winter solstice.

In the midst of so many artists on the street as homeless in New York City, he went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to survive an artist. Would not he have been with me as a partner rather than a wife?

'Once a year in a winter solstice, let’s cook red bean porridge to my partner and also wipe out evil spirits from the house. If I cheer up him the business will thrive, 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