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29, 2014

김밥과 미트볼

어제저녁엔 미트볼을 만들고 오늘 아침엔 김밥을 쌌다.

미트볼을 반죽하며 친구 아이를 생각했다. 아이는 맑은 물처럼 순수하다. 청량제를 마시고 난 후 톡 쏘며 단맛으로 이어지는 목마름이 아니라 오랜 갈증을 밀어내는 순수한 물맛이다.

미트볼은 시아버지가 가르쳐준 레서피다. 먹다 남은 빵 두 쪽에 우유를 붓고 손으로 짓이긴 후 간 고기, 다진 양파, 달걀, 소금, 케첩, 마늘을 넣고 반죽한다. 동글게 빚은 미트볼을 프라이팬에 골고루 타지 않게 둥글리며 자상하신 시아버지 말씀이 기억났다. 
"삶은 스파게티는 국수처럼 물에 헹구면 안 된다."

김밥은 하루 전날 절여 놓은 오이에 아보카도만 넣고 주로 만든다. 심심한 맛의 김밥을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팸도 곁들였다.

아이는 공항에 버려진 꽃도 안쓰러워 집에 가져와 꽃병에 꽂는다는 유능한 의사 남편을 둔 친구 딸이다두 시간 떨어진 펜실베이니아 시골에 가야 하는 차가 없어 쩔쩔매는 아이의 안쓰러운 모습에 부탁도 하지 않은 일을 자진해  따라나선 것이다. 가다가 길을 헤매긴 했지만 사내 녀석만 둔 나로서는 딸과 여행하는 기분에 들과 산이 더욱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아이는 도와준다니까 몹시 고마워했다. 함께 다니며 식당이라도 들락거리면 아이가 미안해할 것 같아 김밥을 쌌고 어둑해지는 저녁에 돌아와 허둥대며 식사 준비하면 아이가 불편해할까 봐 전날 미트볼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꾸 미안해하는 아이를 집에 들러 스파게티를 먹고 가라고 더는 붙잡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성숙한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점잖고 겸손하다. 그들 앞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뻔뻔하게 떠들던 자신이 부끄럽다. 아이가 어른과의 침묵의 공간을 불편해할까 봐 필요 없는 말을 지껄여 댔다는 변명으로 위로하지만, 창피하고 후회스럽다.

얼마 전에도 여자 셋이 중국집에서 수다 떨다 옆에 앉아 조용히 밥 먹던 아이들에게 눈총을 받았다.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떠들던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정녕 이렇게 뻔뻔하고 수다스럽게 늙어갈 것인지!

나도 한때는 그들처럼 해맑고 순수했었는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건가?

Friday, November 28, 2014

Gimbap and meatballs

I made meatballs last night and I wrapped gimbaps this morning.

I kneaded meatballs and thought about my friend’s daughter. She is as pure as fresh water. Isn’t it a thirst that leads to sweetness after drinking soda, but a pure water taste that pushes out a long thirst?

Meatball is the recipe that my father-in-law taught me. Poured milk on the two leftover breads and knead with ground meat, chopped onion, egg, salt, and ketchup, garlic. I thought of my father-in-law who said, “You should not rinse spaghetti in water,” while baking the round meatballs that wouldn’t be burn in a frying pan.

Gimbap is usually made mainly with only avocado and the cucumbers that were pickled the day before. I prefer to eat to dip gimbaps into soy sauce with wasabi, but this time I made it with kids' favorite cucumber and spam.

My friend’s daughter without a car said she had to go to Pennsylvania two hours away. Knowing the sorry situation of her without a car, I voluntarily went with her. Although I had been wandering the road on the way, but the fields and the mountains looked more charming and I enjoyed the time.

She was very grateful for helping. I packed gimbap because I though she would be sorry if I bought lunch for her at the restaurant. I also made meatballs last night because she would felt uncomfortable when we came back in the dim evening and rush to prepare a meal. I no longer held her who was constantly sorry to eat spaghetti at my home.

What happen? Is that the way it is? Today’s mature girls are more gentle and humble than adults. I am ashamed of myself for making a big voice in front of them shamelessly. I comforted myself with the excuse that I was talking unnecessary things out of fear that she might be uncomfortable the silence with me, but I am embarrassed and regretful.

Not long ago, three women, including me, chatted in a Chinese restaurant. The girls sitting next to us quietly caught our eyes. I can’t stop thinking about myself without stop chatting loudly even if I had the conscious of the girl's poignant gaze. How dare I am going to grow old with impudent and a big mouth!

I used to be as innocent once as my friend’s daughter. Did I go too far?

Saturday, November 22, 2014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침에 남편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은 떴지만,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자고 나면 밤새 이불을 감싸고 뒤치다거리다 지새운 피곤이 풀리기 바래서다.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기운이 없고 기분도 그저 그렇다.

빨리 가야 하는데.’
시어머니가 요즈음 전화통화 때마다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반복하시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이 죽고 싶을 때 끊을 수만 있다면 아픈 목숨 굳이 연장하겠느냐만 그럴 수도 없고, 그때마다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다
가긴 자꾸 어딜 간다고 그래요.”
우리만 빼고 자식 모두 LA에 가까이 살며 어머님에게 잘한다. 특히 큰형님과 동서가 상냥해서 며느리 잘 얻었다고 주위에서 부러워들 하는데 멀리 있는 나보고 어쩌라는지.  

시할머니 모시고, 오랜 세월 외국으로 떠도시는 시아버지 없이 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집안 살림만 하셨다. 숙기가 없으셔서 모임에도 나가지 않아 친구도 없으시다. 나이 들어 하던 살림을 놓고 나니 남는 것은 혼자 있는 긴긴 시간뿐, 아픈 곳도 없다시는데 우울증이 온 것 같다. 나를 무척이나 예뻐하시던 시아버님이 둘째 녀석 낳았을 때 만만치 않은 가격의 판화기를 사주셨다
"아이와 남편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전공 살려 하고 싶은 일하며 노후를 보람있게 보내라."
긴 한숨을 내쉬며 혼자 남겨질 밥과 빨래만 할 줄 아는 시어머니 앞날을 걱정하셨다.

양가부모님은 내가 뭔가 필요로 할 때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난 시어머니의 괴롭다는 말조차 듣기 싫다. 죄송함을 동반한 귀찮음으로 나의 야속함에 내가 괴롭다자식이 함께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진대. 본인 스스로 젊었을 때부터 소일거리를 찾아 배웠어야 했는데 자식 키우며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어찌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웃 폴리쉬 친구 아버지도 오랜 병석에서 괴로워하다 얼마 전에 가셨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만난 그녀의 입에서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몸이 아프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 너는 어떻게 할 꺼야?"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다.
가장 편하게 죽는 방법을 너는 알고 있니?” 
웃으며 다시 물었다. 지금은 웃고 지나치듯 이야기하지만, 언젠가는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 함께 차차 연구해 보자."
고 대답하고 씁쓸하게 헤어졌다.

나이 든다는 것은 자살을 생각할 만큼 무척이나 가여운 일인 듯하다.

Friday, November 21, 2014

Getting older

In the morning I woke up to the rustling sound of my husband, but I did not get out of bed. I’m sure I’ll get rid of the fatigue I stayed up all night, but I didn’t sleep again. I have no energy and I am not in a good mood.

“I have to die quickly," my mother-in-law repeats these days as if she had turned on tape recorder whenever she calls. If I could give up my life when I want to die, would I have to prolong it?

All of family-in-law, except for us, live close to LA and are good at mother. The surrounding people envy my mother-in-law, saying that she has gotten her daughter-in-laws well. But what should I do in the distance?

My mother-in-law has been raising five children without her husband, who has been abroad for long time. She doesn’t even have friends and she doesn’t go to church. She seems to have become depressed. 

When my father-in-law, who was very fond of me, bought me an expensive printing machine, when I gave birth to a second son. He told me that don’t just depend on your children and husband, do what you want to do to make your major alive, and spend your old age worthwhile. He was worried about the future of my mother-in-law, who can only do cook laundry and clean.

Both parents helped us a lot when we needed something. I do not even want to hear that my mother-in-law is suffering. So I am troubled by my bitterness by the annoyance accompanying the sorry.

It's not supposed to be solved the problem that children and parents live together. She had to find her hobbies from her youth. How could she learn a hobby when she was youth and had a hard time raising her own children?

My neighbor's father passed away recently after suffering from a long illness. She decided to kill herself if she is sick like her father and asked a sudden question. "What are you going to do?"

"Do you know how to die the most comfortable?" She asked with a smile. Now, I am laughing and talking about death, but someday I think I might desperately need a way to die without pain.

Getting older seems to be a pity enough to think about suicide.

Saturday, November 15, 2014

쌈짓돈을 풀다

예전엔 자주 만나곤 했는데 유명해지더니 뉴욕에 왔다는데 연락도 없네.”

서울에서 온 유명 작가에 대해 사람이 그러는게 아니라.’며 섭섭한 표정으로 불만을 토하는 지인을 만나고 돌아왔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그녀와는 상반된 생각에 한동안 착잡했다.

세상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물 흐르듯 변한다. 아무리 애써도 멈출 수 없다. 무명 시절엔 시간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수 있지만, 유명해지면 갈 곳도 부르는 사람도 많아진다. 노는 물이 달라지다 보니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멀어질 수도 있다. 지금 그녀의 섭섭함 또한 언젠가는 변한다알고 지내던 사람의 변화에 적응 못 해 섭섭해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야말로 뭔가라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 내적인 마음을 다스리는 변화는 참선으로, 우선 외적인 겉모습이라도 변신을 해보자.

눈에 띄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옷차림으로 오프닝에 나타나는 지인이 있다. 그녀가 입은 옷을 훔쳐보며 지내다 용기 내어 
"옷을 잘 입네요."
도와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입던 옷들은 모두 버려요."
패션 코디네이터를 자청하며 쇼핑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소호에서 만났더니 하는 말. 그녀는 나를 위해 사전답사를 끝냈고 필요한 품목을 빽빽이 적어주며 내 옷을 모두 버리라고 충고했다.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그나마 좋아하는 옷이 머릿속으로 휘리릭 지나가며 
"전부다!" 
놀랬지만, 알았다고 했다.

아주 단순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검정, 회색, 베이지색이나 흰색 바지와 치마 그리고 카디건 스웨터, 청바지와 엥클부츠, 검은 뿔테 안경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고 점잖은 모임에 입고 갈 옷은 일주일 후 다시 생전 들어 가 본 적이 없는 백화점에서 쇼핑했다. 늘어나는 카드빚으로 속이 쓰렸지만 
"좋은 옷을 입고 싶어도 그럴 날이 얼마나 남았느냐?" 
는 그녀의 충고에 고개를 끄떡였다.

부실한 가슴을 가리는 Tug neckline 셔츠, 작은 키를 커버하는 Boot cut 바지, 아예 세탁소에 함께 가서 바지 기장을 줄이는 도움까지 받았다. 조언자가 나타났을 때 물심양면을 다해 따라야 한다. 그냥 물 흐르듯 변화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노를 열심히 지어 좋은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발바닥이 불나도록 따라다녔다.

친정엄마가 아끼고 쓰지 않고 모은 돈 결국에 딸들도 쓰지 못하고 며느리만 귀부인으로 만들었다. 나야말로 누구를 위해 아낄 것인가? 남편의 동의하에 쌈짓돈을 미련 없이 풀었다.

Friday, November 14, 2014

Be spend pocket money

"I used to meet her often before, but once she became famous, she does not even contact me.”

I met an acquaintance who expressed displeasure with a grim expression, saying, "It's not what a person does.” But I think it's possible because it is a human.

Everything in the world is constantly changing. No matter how hard I try, I cannot stop. In the days of obscurity, people can meet others by snooping around here and there, but when people becomes famous, they may become distant from the people used to meet because more and more people are calling to meet.

I thought I should change something as I looked at the acquaintance who was not able to adjust to the change of the person she knew. The change that dominates the inner mind that takes a long time. First, let's try to transform even the outer appearance.

There is a person who appears on the opening with an unsightly, sophisticated and comfortable attire. While I was peeping at her clothes, I bravely started saying, “you’re a good dresser” I began to talk to her asking for help.  

I met her in Soho, Manhattan. She volunteered as a fashion coordinator to help me with shopping. She finished the preliminary exploration for me, advised me to throw away all my clothes, giving me a tight list of the necessary items I needed. I was surprised.

In simple designs and colors, black, gray, beige or white pants and skirts and cardigan sweaters, jeans and ankle boots and black horn glasses should be standard. Clothes to wear at a decent meeting shopped in a department store that had never been before a week lather. I was tired of the growing credit card debt, but I agreed with her advice, "Even if you want to wear good clothes, It won’t last long.”

I got a tug neckline shirt covering the poor chests and boot cut pants covering the short height. At the same time, I was helped to reduce the length of the pants.

I could not use my mother’s savings that my mother had saved for her whole life. Eventually, her daughter-in-law was squandered with luxury. Who will I save for? With the consent of her husband, I Spend pocket money without hesitation.

Saturday, November 8, 2014

길을 잃다

세상은 매일매일 내가 모르는 것들을 쏟아내며 소외감에 멍청해진 나를 빼돌리고 저희끼리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다. 나름대로 종종거리며 따라가느라 노력하지만 야속하게도 저만치 앞서 가며 나를 비웃는 둣하다.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로부터 일용할 양식이 배달되듯 매일 아침마다 ‘Catch of the day’라는 e메일이 온다. 블로그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디론가 먹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고 싶어 군침이 돌고 궁둥이는 들썩거린다. 마침 진정한 뉴욕커가 되고자 했던 차에 얼마나 유용한 블로그인가!

"선생님, 한국에 계신 비평가님이 선생님 칼럼에 코멘트하셨어요~ 최근에 페친 되셨는데, ^^"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는 분에게 받은 e-메일이다.
"페친"
뭐지? 폐를 끼치는 친구? 눈에 익긴 한데 뭐지?’ 하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머리를 갸우뚱하다 페이스북 친구의 준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뉴욕컬쳐비트에 올린 내 글에 비평가가 코맨트를 한 줄 알았는데 내 글에 대한 코맨트가 아니라 페이스북에 
"이수임 선생님 브루클린에 계실 때 맛있는 밥 주신 적 있는데. ^^ 뉴욕에 가면 찾아뵙고 싶네요."
라는 글이 달려있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브루클린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니! 누구지? 어제는 페친을 몰라 헤매고 오늘은 누군가를 기억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유학시절 지인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벅고 사람들의 화기애애 떠드는 소리를 귀 귀울여 들었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고 설거지를 거들면 서울 집에 간 듯 포근했다. 그 기억으로 내가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많은 사람을 초대했다.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하길 즐기던 남편 또한 한몫 거들기도 했다.

남편은 떠들고 나는 음식 준비한다고 지지고 볶느라 사람들을 건성으로 통성명만 주고받았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누가 누군지 생소할 수밖에. 페이스북에 들어가 사진을 보고 구글에서 찾아봐도 전혀 모르는 얼굴이다. 얼굴을 뜯어 고쳤을 리도 없고 남편에게 물어도 모른단다. 아무래도 밥을 한 번 더 먹으며 옛 기억을 더듬으면 아! 알겠다고 비명이라도 지르겠지만, 멀리 서울에 산다니 답답하다.

따라가지 못하는 세상에서 기억력 감퇴까지나! 과거는 퇴색되고 미래는 더욱더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고 현재는 계속 팔색조 모양 변하며 저 멀리 달아나니 현대첨단 정보 문화시대의 고아로 방황한다.

Friday, November 7, 2014

Lose one's way

Every day, the world is pouring out new things I do not know and rushing somewhere. I often try to follow it but it is sneering at myself in front of me.

Every morning the newsletter 'Catch of the day' comes from NYCultureBeat. Looking into 'Catch of the day', I want to go out and find a good place to eat. What a useful blog that I wanted to be a true New Yorker!

'A critic who became your petchin in Korea commented on the your column.’ I recently received e-mail from someone who runs the NYCultureBeat.

What is the 'petchin'? A friend who’s bothering me? I fell asleep with what is it? I woke up in the morning and realized that it means a Facebook friend.

On Facebook, she said, 'I had a delicious food when I went to your house. I would like to visit you when I go to New York.’ She is a stranger. I don’t know her at all. She came to my house and ate some food! 'Who is she?' Yesterday, I did not know the word, petchin, and today I was in trouble to remember someone.

When I was studying abroad, I went to my friend 's house, got a meal, and listened to the sound of people' s flirtatiousness, soaking hands in warm water and washing dishes. With that memory, I invited a lot of people after I got married. My husband, who used to invite people to talk, also helped.

My husband talked and I exchanged people’s name for nothing just to make food and stir-fry. I do not even know her when I go to Facebook and look at her photos and look at her on Google. Did she get a plastic surgery? Maybe we will know if we eat one more meal and follow old memories. However, I am frustrated that she lives in Seoul far away.

The past has faded away, the future has flew to a more unknown place, and now it is constantly changing and drifting far away, wandering to the orphans in the era of modern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