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생전 들러리라고는 서 본 적이 없는데 잘하면 친구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게 될 것 같다. 친구가 결혼하고 싶다니 들러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부케 또한 받아 본 적이 없어 탐이 나지만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
매달 둘째 화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친구들 서너 명과
그달 읽은 책에 관해 한바탕 수다를 떤다. 북클럽 시간에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많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비슷한 처지끼리 남아 다물고 있던 입 운동을 하느라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지껄이며 노는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
을 각자 돌아가며 이야기하다 한 친구가 2년 동안 사귀던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기에 60이 글피인 여자들이 들러리를 서겠다며 난리가 났다. 싱글인 친구가 부케를 받기로 하고.
결혼식은 버뮤다 휴양지에서, 비용도 각자, 드레스도 각자가 하겠으니 결혼 날짜만 잡으라고 모두가 흥분했다.
그중 한 친구 아들이 얼마 전 도미니카 휴양지에서 결혼식을 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뒹굴고 있는데
‘엄마 빨리 와 나 결혼식 해야 해.’
하고 불러서 식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더욱 흥분했다.
먹고 마시고 놀다
‘빨리 와 내 결혼식 시작했어.’
부르면
할머니들이 같은 색 드레스를 입고 뛰어가는, 게다가 나이 든 신랑 측 들러리들이 턱시도를 입고 늙어서 펭귄처럼 뛰어오며 저희 늙은 것은 생각 못
하고
‘웬 할머니들이’
상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럴 때 유쾌하고 경쾌한 꺼리를 만들어 즐기며 살아야지. 여행 패키지값만 내면 리조트에서 결혼 준비를 다 해준다. 주례까지. 친구끼리 여행도 갈 겸
떠나고 싶은데 남편은 혀를 찬다.
“또 시작이야. 언제 철들래?”
“철들면 심심하고 외로워 그리고 피곤해 그냥 이렇게 나이브(naive)하게 살다
가면 안 될까?”
노인네처럼 툭하면 혀를 차는 남편을 확 내다 버리고
싶지만, 예전과는 달리 수입도 짭짤하게 만들어 오니 살살 꼬드겨 들러리 서러
휴양지에 가고 싶다. 그런데 친구가 나를 들러리 서라고나 할까?
얼굴 주름살은 눈에 띄지만 그중 내 허리가 가장 가늘어 드레스를 입으면 뒷모습은 봐 줄 만한데?
계획도 없는 일을 나 혼자 흥분하며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생 별거 있나 할 수 있으면 재창조해 가며 즐겁게 남은 생을 살아야지.
"친구야, 내가 들러리 서지 못해도 좋으니
행복하게만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