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8, 2013

천만의 말씀

엄마, 짜장면 배달시켰는데 문밖에 서 있다가 온 것처럼 눈 깜박할 사이에 와서 놀랐어요. 맛있고, 싸고 팁도 없어요.” 
서울 간 아이와의 스카이프 통화 내용이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국말만 했다. 한국말로 대꾸해야 밥 한술이라도 더 얹어주니 아이들도 한국어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한글 쓰기와 읽기를 가르치기는 쉽지 않았다. 몸을 비비 꼬며 엄마 그만할래.”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 가르치는 내가 먼저 지쳤다.

그만하자. 그만해. 한국말 못한다고 뭐 큰일 나겠니. 나중에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원망만 해봐라.” 
집어치우기를 수십 번. 한글반이 있다는 퀸스에 있는 교회에 연락하니 브루클린으로는 버스가 안 간다며 무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엎어지면 우리집인데.

옆에서 보다 못한 남편이 칠판을 걸고 서당 선생처럼 
"가나다라마바사, 아야어여오우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문자가 사용되지만 정확하게 만든 사람과 시기가 역사적으로 기록된 유일한 문자가 한글이야."
"리얼리!"
남편이 말하면 감탄하며 배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성년이 되어 한국에 가서 음식점 메뉴판을 읽고,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맛있게 먹고 지내는 것이 신이 났다
식당에 가면 아줌마가 몇 살이냐? 뭐하냐반찬도 더 주며 교회 다니냐? 자꾸 물어봐요왜 한국 사람들은 남의 일을 알고 싶어 해요?” 
원래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그러니까 잘 대답해. 짜증 내지 말고.”

마음에 드는 여자 없니?” 
한국 여자들은 뉴욕에 있는 애들하고 달라요. 얼굴과 옷차림이 다 비슷비슷하고 사귀는 남자와 똑같은 신발과 옷, 커플링을 하고 다녀요. 엄마, 왜 한국 여자들은 어린애처럼 앵앵~ 말하며 보이프랜드와 함께 있으려고만 해요?” 
처음 겪는 한국에서의 자기 또래들의 문화 차이에도 당황한듯했다.

“한국사람들은 모두 친절해요. 부담 갖지 말고 어려운 일 있으면 부탁하래요.” 
아들이 ‘부담’이라는 말도 할 줄 알다니. 아이의 한국말 발음과 단어 사용이 매번 통화할 때마다 나아지는 게 신통했다.
“엄마, 내가 영어로 말하면 한국말로 하라고 해요.” 
짜슥들이 인제야 언어 하나 더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도 엄마 아빠의 모국어를, 공부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엄마가 만든 음식 먹고 싶으면 백반을 주문해.” 
그게 뭔데요?” 
그러고 보니 6~70년대 한식당의 기본 메뉴인 백반이라는 말을 아직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메뉴판을 잘 들여다봐.” 
글쎄, 생선구이는 본 것 같은데요.”

엄마, 한국말 잘 가르쳐 줘서 고마워요.” 
감격해서 할 말을 잃은 나는 침묵을 지키다 
“You are we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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