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20, 2026

오백 번째 이야기

제가 500번째 글을 쓰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 500점의 작품과 함께 말입니다.

2008년 6월 11일, 첫 글인 ‘위층에 사는 마리아’를 썼습니다.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 살 때, 같은 건물 4층에 살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할머니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 할머니의 정확한 나이를 여쭤본 적은 없지만, 92세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녀의 남편 토니는 아침마다 노인 복지 센터에 갈 정도로 건강하게 4층 계단을 오르내렸고, 마리아는 병원에 갈 때 외에는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늘 토니가 더 건강한 줄 알았는데, 그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후 마리아는 혼자 남겨졌습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일하고 돈을 모으느라 아이도 낳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쉽게 상하곤 하는 우유를 핑계 삼아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토니, 수임이 왔어.”

나를 부르는 마리아는 남편 토니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자꾸만 잊은 듯 행동했습니다.

글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마리아 이야기를 시작으로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의 사연을 다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거리가 없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8년 동안이나 중앙일보에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니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내가 중앙일보에 글과 그림을 보내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면, 신문사에서도 “잘 받았습니다.”라고 이메일 답장이 옵니다. 나는 제때 글과 그림을 보내고, 중앙일보는 제때 신문에 실어 줍니다. 이 담백한 약속이 이어져 왔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 덕분에, 글과 함께 그림도 보내야 하는 이 연재는 내가 거의 매일 붓을 놓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글이 곧 그림 작업을 계속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된 셈입니다. 중앙일보가 내어준 소중한 지면 덕분에 글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또 다른 글쓰기의 동기는 바로 제 남편입니다. 남편은 내가 자신에 대한 불평불만을 글에 써도 개의치 않고,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쓰며 스트레스를 풀라고 늘 응원해 줍니다.

처음에는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다가 ‘집안망신을 시키는 것은 아닐까?’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뭐 그리 대단한 집안이라고 쓰지 못할 이유가 있나’ 하는 마음에 마구 써 내려갔습니다. 내 글을 읽고 남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함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마침내 빛을 볼 날을 만난 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늘고 길게, 오래가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어렵고 유식한 소재가 아니라 눈만 뜨면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상을 일기 쓰듯 씁니다. 그렇기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 글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