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서로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남편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생일이
제헌절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냥 잊고 지나간다. 기억해봤자 피곤하다는 생각이 기억
못하도록 방해하는지 아예 작정한 듯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생일 축하한다.
건강해라.”
언니의 텍스팅을 받았다. ‘오늘이 내 생일인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늘 엄마가 하던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얼마나 더운 날에 태어난 줄
아냐?”
엄마는 나를 그렇게 더운 날에 힘들게 낳고도 애지중지 키워 내 생일 또한
잊지 않고 챙기셨다. 6학년, 내 생일날이었다. 여느 생일날과 마찬가지로 수박을
먹었다. 오른쪽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점점 더 아팠다. 방을 구르며 난리 쳤다.
아버지가 나를 둘러업고 집 근처 병원으로 뛰어갔다. 맹장에 수박씨가 들어가
수술했다.
나야 이미 맹장 수술을 했으니 괜찮은데 남편이 수박을 먹을
때마다 씨를 먹고 맹장 수술을 하면 어떡할지 걱정하며 조심하라고 잔소리한다.
미국에서 병원에 갔다가 병원비 날벼락 맞을 생각만 하면 수박을 사려다가도 멈칫하고
주저한다. 병원비 걱정이 수박을 먹고 싶은 것을 누를 정도로 나는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돈에 관한 숫자 기억도 꽤 잘한다.
안타깝게도 사람들 얼굴과 이름은 아마
돈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남편은 모임에 가기
전에 나에게 당부하곤 한다.
“사람들이 다가와 아는 척하면 ‘누구시더라? 어디서
뵈었나요?’라고 뜬금없는 말 하지 말고 그냥 고개 숙여 인사만 해. 알았지. 돈 숫자는
일전도 틀리지 않고 기억 잘하면서 어찌 여러 번 만난 사람 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내가 사람 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해 성공하지
못했잖아. 이러다가 당신 얼굴도 기억 못하는 것 아닐까? 그때는 그냥 나를 양로원에
내다 버려.”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휠체어에 태워서라도 밀고 다닐 거야.”
“그때 가서 확인 해 봐야 할 일이지만 말이라도 고마워. 생일 선물로 메가밀리언 한
장만 사다 줄래. 누가 알아 휠체어값이라도 당첨될 줄. 나를 버리지 않고 끌고
다닌다니 고마워서 휠체어는 내가 준비해야지. 그동안 나와 살아봐서 알겠지만, 나
무작정 신세 지는 양심 없는 사람 아니라고.”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이
사람 얼굴을 기억 못하는 안면 실인증 환자란다. 목소리로는 누구인지 기억하는데
얼굴과 이름을 기억 못하는 나도 안면 실인증 환자는 아니겠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