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아, 넌 잘하다가 왜 갑자기 성질내냐? 그동안 잘한 것이 다 부질없어지잖아.”
뇌리에 새겨진 어른들의 쓴소리가 목덜미를 잡아 매사에 조심하다가도 그럴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
“나는 원래 그런 성질머리를 가졌어. 그러니까 날 건드리지 말라고. 건드리지 않으면 난 절대 성질내지 않는다고. 내가 너에게 귀찮게 이것저것 부탁하디? 그런 적 없잖아. 제발 조용히 있는 날 건드리지 마!”
시시콜콜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미국 생활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바쁘다. 바쁜 일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본인 스스로가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본인 시간과 금전 아끼려고 부탁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 있다. 주위에 누구에게 부탁할까 궁리하다가 한사람이 걸리면 남의 밥상에 숟가락을 슬쩍 올리듯 아니면 무임승차하듯 올라탄다. 한번 들어 주면 다른 부탁을 또 가져온다. 끼어드는 눈치는 빠삭해도 상대가 싫어하는 눈치는 없는지, 아예 무시하는지 얼굴 가죽이 두껍다. 점잖게 참고 자시고 할 것도, 앞뒤 사정도 보지 않고 나는 성질을 버럭 냈다. 본인은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로 성질낸다며 오히려 착한 척 점잔 빼며 빠진다. 결국 나만 정신 나간 년이 됐다.
‘미친 짓 좀 하면 어때. 욕먹으면 좀 어때.’
속이 후련하고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드디어 진드기 같은 그는 떨어져 나갔다.
반대로 새벽에 전화해서 나를 깨우고 몇 날 며칠을 찾아와 부탁해도 성질이 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부탁한 일을 내가 더 흥분해서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며 도와주고 싶어 고민하며 밤잠을 설쳤다.
부탁 한 사람은 매사 산뜻하고 평소에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은행에 신용을 잘 쌓듯이 사람들에게도 신용이 두터운 사람이다. 일단 그 사람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애쓰다 나에게 연락한 것이다. 부탁을 받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를 생각했다.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가벼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입술이 터지고 뱃살이 줄어들 정도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깃털 날리듯 가볍웠다. 덩달아 나도 그의 일을 도와주면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누구 말로는 떼어 내고 싶은 사람에게 돈을 꿔 달라고 하면 떨어져 나간단다. 돈 이야기는 은행하고 만 하는 나는 버럭 내는 성질로 다시는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떨어져 나간 줄 알았던 그 인간이 ‘너는 못됐지만 나는 착해서 너를 용서한다.’라는 듯이 슬쩍 연락을 또 했다.
“오마이갓! 질기네. 질겨. 이 인간이 칡뿌리를 삶아 먹었나!”
나는 질려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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