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와 만남은 꺼리지만, 일단 걸려 온 전화나 사람들을 만나면 나의 수다는 쉬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이어진다.
나는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무척 즐겼다. 그러나 친구들이 결혼할 때 난 노처녀였고 아이 낳아 키울 때 난 아이가
없었다. 친구들이 직장 다닐 때 난 스튜디오에 처박혀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수다 떨고 싶어 연락하면 친구들은 바빴다. 물론 그들이 한가할 때 나도 동분서주했지만. 우리들의 바쁜 시기도 지나고 한가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손주에 빠져 산다.
난 손주가 없어서 한가한데. 친구들과의 엇박자 인생인 나의 수다는 자연스럽게 신문
지면에서 떠들어댈 수밖에 없었다.
“요즘 너 뭐 하고 사는지 다
알아. 어쩜 네 사생활을 그리도 까발릴 수 있니?”
친구들은 지면으로
나의 근황을 읽고 의아해한다. 혹시나 자기들과 떤 수다를 쓸까 봐서인지? 만나는 것도 꺼리는 느낌이다. 이 여자 왜? 자기 사생활을
줄줄이 굴비 역 듯이 쓰는 거야? 하는 독자들도 있을 거다.
글 쓰는 것이 전공 아닌 그리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내가 뭔가를 쓰고 싶어 긁적거리다 보니 나의 일상의 수다를 떨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은 정보가 있어 구글에 치면 주르르 뜨는 편리한 세상에 찾아도 뜨지 않는 것은 내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감칠맛 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하도 쓰다 보니 감칠맛이 떫은맛으로 변질되는 듯하다. 어설픈 솜씨로 홈메이드 와인을 빚다 보면 식초로 변질하듯 말이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은 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쓰란다. 내가 글을 쓰는 한 바빠서 저희를 들볶지 않을 것이고 엄마 정신 건강(침해)에 좋다나.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자아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라’
라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우선 글을 쓰므로 자아를 조금이나마 성장시키자. 식으로 오늘도 삼백 번째 수다로 지면을 메운다.
2008년 6월 12일부터 중앙일보에 첫 글을
시작했으니.
나뭇잎처럼 떨어져 묻혀 사라지는 나의 기억들을 누가 10년씩이나 들어줄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돈 받고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동안 내 이야기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나는 빚쟁이인 셈이다. 사례해야 할 것 같다.